히브리서 6:1에서 **"다시금 죽은 행실에서 돌이키는 회개와 하나님을 믿는 일과"**를 반복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곧 회개하지 말라 또는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의미가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을 정확히 보면, 그 뜻이 다릅니다.
1. "다시금"이 강조하는 의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시금 (πάλιν, 팔린)"**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또다시', '반복해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계속해서 기초적인 수준에서만 머물러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2. "초보적 교훈을 떠나 성숙함을 향해 나아가라"가 핵심
히브리서 6:1의 핵심은 **"초보적 교훈을 떠나 성숙함을 향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와 믿음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초적인 회개와 믿음만 반복하고 머무르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 그 자리에만 머물러서 같은 기초를 계속 반복할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죽은 행실에서 돌이키는 회개"란 무엇인가?
"죽은 행실에서 돌이키는 회개"란 단순히 죄를 회개하는 것을 넘어, 히브리 성경을 대대로 계승해 온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여 형성한 교리적 행위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된 믿음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오랫동안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온 잘못 해석된 율법적 교리와 그에 따른 행위가 신앙의 일부였지만, 그것이 참된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죽은 행실 (νεκρῶν ἔργων, nekron ergon)"**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즉, 형식적인 행위에 의존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깨달음이 주어질 때, 그 변화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차이를 넘어, 깊이 뿌리내린 종교적 전통과 인간이 만든 교리 체계가 도전을 받을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갈등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던 성경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기존에 널리 퍼져 있는 다수의 의견과 충돌할 때, 심각한 어려움과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며,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고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4. "하나님을 믿는 일"도 반복하지 말라는 뜻인가?
"하나님을 믿는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은 믿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언제까지나 믿음의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결론: 회개와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만 반복하지 말라는 뜻
히브리서 6:1-2는 기초적인 신앙의 반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더 깊고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 "회개하지 말라" → ❌ (X)
🚫 "하나님을 믿지 말라" → ❌ (X)
✅ "기초적인 회개와 믿음에만 머물지 말고, 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라" → ⭕ (O)
이해가 되셨나요? 😊
고린도후서 3:14-16 (예슈아직역)
14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둔하여졌으니,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동일한 수건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으며, 이는 예슈아 안에서 제거되기 때문이라. 15 오늘까지도 모세의 글이 읽혀질 때마다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16 그러나 누구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지리라.
이 본문에서 **‘수건’(καλύμμα, 히브리적 개념으로는 ‘마스크’ 또는 ‘덮개’)**은 모세오경을 포함한 모든 히브리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것이 예슈아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바탕으로 볼 때, 단순히 **"구약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완전하심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수건덮인 구약해석"**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한 개념을 전달합니다.
이는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고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에 경험했던 성경 해석과 적용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강조한 것처럼, 예슈아를 통해서만 성경의 참된 의미가 드러나며, 수건이 벗겨질 때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1. 히브리서 6:2의 문제점과 올바른 번역 방향
히브리서 6:2에서 "침례들, 안수, 죽은 자들의 부활, 영원한 심판"을 "기초적인 교훈"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부활과 영원한 심판은 신앙의 핵심 요소이므로 단순한 초보 교리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본문이 어떤 배경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침례들"(βαπτισμῶν) → "정결 예식들"
**헬라어 "βαπτισμῶν"(baptismōn, 복수형)**은 신약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침례(세례)"(βάπτισμα, baptisma)와 다르다.
복수형으로 사용될 때는 신약 교회의 침례 개념이 아니라 구약의 정결 의식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9:10에서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며, 이는 레위기에서 나오는 **정결 예식(세례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서 복수형의 "침례들"을 **"정결 예식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3. "안수"(ἐπιθέσεώς τε χειρῶν)와 그 의미
**신약에서 안수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구약의 속죄 제사에서 안수하는 전통(레위기 16:21)**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신약에서는 성령의 임재, 병 고침, 사역자의 임명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히브리서 6:2의 문맥은 구약적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4. "죽은 자들의 부활"(ἀναστάσεώς τε νεκρῶν)
신약에서의 부활 개념과 구약에서의 부활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부활 개념이 완전히 계시되지 않았고, 일부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부인했다(사도행전 23:8).
여기서 언급된 "부활"은 예슈아를 통한 완전한 부활 신앙이 아니라, 수건덮인 구약해석에서의 부분적 오류가 포함된 부활 신앙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5. "영원한 심판"(κρίματος αἰωνίου)
최후의 심판 개념보다는, 구약에서 제한적으로 드러난 심판 개념에 가깝다.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반복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했으며, 최후의 심판 개념은 신약에서 더욱 명확하게 계시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심판"은 신약적 의미의 완전한 심판 개념이라기보다, 수건덮인 구약해석에서의 제한적인 심판 개념을 뜻할 가능성이 크다.
6. "기초적인 교훈"의 의미
히브리서 6:1-2에서 언급되는 것들은 신약에서의 완전한 계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수건덮인 구약해석의 초보적 요소를 지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지 말고, 예슈아 안에서 완전한 계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히브리서의 핵심 메시지이다.
7. 올바른 번역 적용
히브리서 6:2의 수정된 예슈아직역
"정결 예식들과 안수, 그리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수건덮인 구약해석의) 기초 교훈을 반복하지 않도록 합시다."
8. 결론
✅ *"구약적"*이라는 표현은 히브리 성서를 대적하는 의미로 오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성경 해석을 위해 *"수건덮인 구약해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 성경은 신·구약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신약이 구약을 대체하거나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구약 속에 이미 모든 것이 예비되어 있으며, 신약은 그것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신약적"*이라는 표현 역시 신·구약을 분리하는 영성을 담고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구약을 읽을 때 수건이 덮인 상태에서 비롯된 제한적 이해와 해석으로 형성된 교리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 히브리서 6:2는 완전한 계시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며, 수건덮인 구약해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초보적 교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온전히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