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6에서 바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탑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이교적 혼합 종교와 철학의 중심지 중 하나로, 이 배의 선원들 또한 헬레니즘과 이방 종교적 풍조에 깊이 물든 자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헬라 철학, 이집트 신비주의가 혼합된 도시였음
해당 배는 로마에 곡식을 운반하는 상선으로, 경제 중심이자 영적 혼합성의 상징물
이 배에 바울이 탑승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이방과 뒤섞인 혼합된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며, 복음이 그 가운데서도 능히 역사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학적 암시입니다.
역사적 배경: 알렉산드리아의 이교 혼합성과 로마와의 관계
도시 발전 시간표 요약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래 유대인과 이방인의 융합 문화 형성
기원전 2세기: 70인역 성경(Septuagint) 번역 –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최초의 공식 문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로마의 통치 아래 이교 신비주의와 황제 숭배 혼합 확산
1세기 초: 바울이 탑승한 알렉산드리아 배가 활동하던 시기
도시 구조 및 종교 분포도 (개요)
알렉산드리아는 크게 3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은 특정 종교 집단 중심:
브루케이온 지역: 헬레니즘 학자 및 철학자 중심, 필로와 같은 유대 철학자들이 활동
라코티스 지역: 이집트 원주민과 이시스·오시리스 숭배 신전 집중
유대인 지구(델타 구역): 디아스포라 유대인 밀집, 율법 중심이나 헬레니즘에 강하게 노출
문헌적 근거들
수에토니우스 (Suetonius): 『로마 황제 열전』에서 알렉산드리아인의 반항성과 다신교 성향 기록
필로 (Philo of Alexandria): 『유대인의 대사』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충돌, 종교 혼합상 묘사
유세비우스 (Eusebius): 『교회사』에서 알렉산드리아가 기독교 초기 해석 전쟁의 중심지였음을 서술
종합적 의미 이 모든 자료는 알렉산드리아가 단지 무역 도시가 아니라, 종교와 철학, 정치가 뒤섞인 '혼합 신학의 수도'였음을 증명합니다. 바울이 탑승한 그 배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그 시대의 세계관과 신학적 충돌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 제국과의 활발한 무역, 군사, 종교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유대인, 헬라인, 이집트인, 로마인 등이 혼합되어 살던 종교적 다신주의와 혼합주의의 용광로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은 로마 황제 숭배, 이시스 여신 숭배, 디오니소스 축제, 유대 율법주의까지 뒤섞인 신앙을 갖고 있었으며, 초기 기독교 신앙과는 정반대의 구조를 이루었습니다.
1세기 당시 로마에서도 알렉산드리아는 “신비주의적 이교의 중심지”로 악명 높았으며, 이는 로마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Suetonius), 유대 철학자 필로(Philo), 초기 교부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도 간접적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배는 단지 물리적 항해가 아닌, 영적 혼합과 타락을 실은 배였고, 바울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을 중심에 두고, 함께한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복음을 간직하고 있던 유일한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27장 1절의 '우리'라는 표현과 27장 2절의 아리스다고 언급은 바울이 혼자가 아니라 누가와 아리스다고 등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 혼합된 영성과 번역의 철학
알렉산드리아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기복신앙의 신학적 뿌리를 형성한 장소였습니다.
플라톤주의적 이원론, 이집트 신비사상, 헬레니즘적 번역 철학이 교회 신학에 스며들어
고난보다는 '형통' 중심의 해석
문자보다는 '영적 의미'로 과도한 해석
실제 복음보다는 주술적 기도문과 종교행위 강조
(2) 알레고리 해석과 신비주의의 혼합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경을 영적·상징적으로만 해석하는 '알레고리칼 해석'을 발전시킴
오리겐, 필로 등은 성경의 문자 의미보다 '영적 진리'만을 중요시함
이 해석 방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성경 본문의 직접적 명령이나 구체적 사건을 무시하고 은유적 해석만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왜곡됨
(3) 현대 기복주의와 번영신학의 기원
오늘날의 번영신학은 “하나님을 믿으면 물질·건강·성공이 보장된다”는 세속화된 알렉산드리아적 왜곡 신학의 연장선에 있음
특히 성령의 사역을 기도 주문화하거나, 인간이 조작 가능한 힘처럼 오해하는 주술 신학도 이 계보에 포함됨
이는 결국 하나님을 주권자라기보다 도구화하고, 복음을 '성취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오류로 이어짐
사도행전 27장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는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에 곡식을 공급하던 주요 상업 무역선으로, 이집트의 경제와 로마의 군사·정치 시스템을 연결하는 관문이었음
즉, 이 배는 단순한 탈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가 혼합된 '세상의 운반 수단'이었고
여기에 탑승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이 그 중심에 침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행 27:33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주리며 기다린 지 오늘까지 십사일이다"라고 바울이 언급합니다.
이 구절은 전통적으로 "폭풍 속의 두려움 때문에 먹지 못했다"는 해석이 따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1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매우 비정상적인 상태이며, 특히 선박 안의 긴박한 상황에서 체력 소모가 극심한 선원들에게는 더욱 납득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교적 또는 주술적 금식 행위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원들이 이방 종교적 의식이나 금식 의례에 따른 행위를 했을 가능성
그들은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 감각(이교적 방법)에 따라 대응했을 가능성
14일이라는 숫자 자체가 정기적 금식 기간, 즉 고대 항해자나 농경 이방 신전에서 사용하던 주기와 겹칠 수 있음
이들은 결국 "자기들만 탈출하려는 시도"(27:30)까지 하며, 이기적이고 종교적으로 뒤틀린 반응을 보입니다.
배는 부서졌고, 바울과 모든 사람은 멜리데 섬에 도착합니다. 멜리데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의 섬.
그러나 그곳에서:
바울은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음 → 하나님의 보호하심
병든 자들을 고침 → 성령의 권능을 이방 가운데서 증거함
이 일련의 사건은 "배가 부서졌음에도 복음은 부서지지 않았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혼합과 이교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복음은 멈추지 않고, 뚫고 들어가며, 치유하고, 살린다는 메시지입니다.
▪ 멜리데 이후의 역사적 열매
바울의 복음 사역 이후, 멜리데(오늘날 몰타)에는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초기 전승에 따르면, 바울이 고침을 행했던 푸블리우스(Publius)가 몰타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푸블리우스는 후에 시라쿠사로 가서 사역하다 순교했으며, 기원후 4세기에는 니케아 공의회(AD 325)에 몰타 대표단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멜리데 사역이 단순한 기적 행위가 아니라, 교회 역사에 실질적 기반을 남긴 사건임을 시사합니다.
28장에서 바울은 로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그들 중 일부만 믿습니다. 이에 그는 담대히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졌으니 그들은 그것을 들을 것이다." (행 28:28)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완고함과 복음의 이방 전환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상징하며, 동시에 알렉산드리아 배에서 시작된 여정이 로마에서 선포로 끝나는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바울이 셋집에서 머물며 모든 사람을 영접하고 "담대히 거침없이"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행 28:30–31)은,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 가운데 이루어진 사역을 반영합니다. '담대함(παρρησία)'과 '거침없음(ἀκωλύτως)'은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으로, 이는 로마에서의 복음 사역이 성령의 인도와 능력에 의한 결말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셋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오히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복음 선포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는 누구든 찾아오는 자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였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셋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닌, 성령의 인도 가운데 세워진 '복음 거점'이자, 로마 한복판에 세워진 영적 전략 본부였습니다.. 이에 그는 담대히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졌으니 그들은 그것을 들을 것이다." (행 28:28)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완고함과 복음의 이방 전환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상징하며, 동시에 알렉산드리아 배에서 시작된 여정이 로마에서 선포로 끝나는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바울이 셋집에서 머물며 모든 사람을 영접하고 "담대히 거침없이"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행 28:30–31)은,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 가운데 이루어진 사역을 반영합니다. '담대함(παρρησία)'과 '거침없음(ἀκωλύτως)'은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으로, 이는 로마에서의 복음 사역이 성령의 인도와 능력에 의한 결말임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예언으로 시작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된 복음 전파는, 28장에서 바울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섬과 로마 한복판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며 끝맺음을 맞이합니다.
이는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성령이 시작하신 사역이 실제로 이방과 세상의 끝을 향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선언이며, 성령 없이 복음은 시작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는 근본적 진리를 드러냅니다.
이 흐름 안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이교적 배에 태우셨고,
이방의 금식과 자기중심적 본성을 뚫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배는 부서졌지만, 복음은 살아남았고,
결국 이방 한복판 로마에서 당당히 선포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항해기가 아니라, 성령으로 시작된 복음 사역이 성령으로 완성되는 구속사의 성령의 역사이며 실제적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