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가 다섯 번째 인을 열었을 때, 나는 보았다, 제단 아래에, 혼들(프쉬카스) — 죽임을 당한 자들의 —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증언 때문에.
Καὶ (카이): 접속사 — "그리고"
ὅτε (호테): 시간 부사절 접속사 — "~했을 때"
ἤνοιξε (에노익세): 동사, 부정과거, 능동태, 3인칭 단수 — "그가 열었다"
τὴν πέμπτην σφραγῖδα (텐 펨펜 스프라기다): 형용사 + 명사 — "다섯 번째 봉인(을)"
εἶδον (에이돈): 동사, 부정과거, 능동태, 1인칭 단수 — "나는 보았다"
ὑποκάτω τοῦ θυσιαστηρίου (휘포카토 투 튀시아스테리우): 전치사구 — "제단 아래에"
τὰς ψυχὰς (타스 프쉬카스): 명사, 여성 복수 대격 — "혼들"
τῶν ἐσφαγμένων (톤 에스파그메논): 과거 수동 분사, 남성 복수 속격 — "죽임당한 자들의"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디아 톤 로곤 투 테우): 전치사구 —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καὶ διὰ τὴν μαρτυρίαν (카이 디아 텐 마르튀리안): 전치사구 — "그리고 증언 때문에"
ἣν εἶχον (헨 에이콘): 관계대명사(여성 단수 대격) + 동사(미완료, 능동, 3복수) — "그들이 가졌던"
📖 요한계시록 6:9 주해 — “제단 아래의 혼들”
"그리고 그가 다섯 번째 봉인을 열었을 때, 나는 보았다 — 제단 아래에, 혼들, 죽임당한 자들의,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증언 때문에."
요한계시록 6:9은 순교자들의 혼이 **‘제단 아래’**에 있다는 신비한 표현을 통해, 순교의 본질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깊은 진리를 드러낸다.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순교는 피 자체가 아니라, 영적인 제물이 하나님께 상달된다
순교자는 단지 피를 흘린 자가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를 위해 드린 자들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피 자체가 아니라, 그 피흘림을 통해 나타난 믿음과 증언, 충성과 사랑의 향기로운 제사이다. 이는 에베소서 5:2이 말하는 예슈아의 향기로운 희생처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영적 제물이다.
2. 제단 아래는 하늘이 아닌 땅에 존재하는 감춰진 거룩한 곳이다
요한계시록 6장의 모든 인봉 심판은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따라서 이 ‘제단 아래’도 하늘이 아닌 땅에 존재하는 거룩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이는 하늘과 연결된 땅의 제단, 곧 신원(伸冤)의 제단이다.
이 신비한 제단은 마치 에덴동산처럼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하는 거룩한 장소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에덴이 인간에게 감춰진 하나님의 정원이었다면, 제단 아래도 순교자의 피와 혼이 머무는 감춰진 성소이다.
3. 혼은 피 속에 있으며, 피는 땅에 머물러 신원한다
레위기 17:11은 혼이 피에 있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순교자의 피는 곧 그의 혼이요, 그 혼은 땅 위의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외친다. 이는 창세기 4:10에서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장면과도 맞닿아 있다. 피는 땅에 흘려지지만, 그 피 속의 혼은 신원(伸冤)을 외치며 하나님께 향한다.
4. 순교자의 혼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
보통 죽은 자는 ‘잠들었다’고 표현되나, 순교자들의 혼은 제단 아래에서 깨어서 큰 소리로 외친다. 이것은 그들이 안식하지 못하는 상태, 즉 잠들지 않은 혼의 상태임을 의미한다. 이는 곧 그들의 영과 혼 사이의 분리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슈아께서 무덤에 계실 때는 혼이 잠들어 계셨지만, 영으로는 옥에 갇힌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벧전 3:19). 이 구조에 비추어보면, 순교자의 혼이 깨어 있는 상태는 영이 그 혼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신학적 유추도 가능하다.
‘제단 아래’는 단순히 피가 흘러든 곳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혼이 깨어 하나님께 신원을 외치는 영적 제단이다. 그 장소는 지금은 인간에게 감춰진, 마치 에덴동산과 같은 이 땅의 거룩한 영역이다. 피는 땅의 것이지만, 그 피 속에 담긴 혼의 부르짖음은 하늘을 향한 외침이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 전체의 흐름에 부합하는 깊은 묵상이지만, 여전히 단정적인 교리로 확정할 수는 없다. 계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겸손히, 성령 안에서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베드로전서 1:9이 말하는 바, "믿음의 결국 곧 혼의 구원", 즉 예슈아를 받는 것이라는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