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한글 번역
개역한글: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개역개정: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바른성경: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셔서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하게 하셨다.
새번역: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
공동번역: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내버려두셨습니다
쉬운말: 더욱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아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런 타락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셔서, 그들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들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
우리말: 더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하찮게 여기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카톨릭: 그들이 하느님을 알아 모시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분별없는 정신에 빠져 부당한 짓들을 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 로마서 1:28 (예슈아직역)
"그리고(카이, καὶ)
그들이 하나님을(테온, θεὸν) 지식속에 두기를(엔 에피그노시스,ἐν ἐπιγνώσει)
합당하지 않게 여겼으므로(우크 에도키마산, οὐκ ἐδοκίμασαν),
하나님께서(호 테오스, ὁ θεὸς)
그들을 버림받은 지적판단기능으로(아도키몬 누스, ἀδόκιμον νοῦν) 넘기셨으니(파레도켄, παρέδωκεν),
그들이 적합(합당)하지 않은 것들을(타 메 카쎄콘타, τὰ μὴ καθήκοντα)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포이에인, ποιεῖν)."
누스는 실체가 아니라 기능입니다.
이성적 사고, 논리적 분별, 도덕적 판단, 깨달음을 수행하는 지적 능력 그 자체입니다.
이 기능은 인간 안에서 이성적으로 작동합니다.
성경은 누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법을 기뻐하고, 생각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 누스를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 이성적 판단 기능을 새롭게 작동시키라
“나는 누스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섬긴다”
→ 하나님의 법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능으로서 작동
“너희 누스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라”
→ 그 판단 기능의 방향성 자체가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
누스(νοῦς)는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지적 판단 기능이다.
성경은 누스를 기능으로만 설명함 ⭕
감정, 의지와 구분되는 독립된 기능 ⭕
누스를(지식과 지성, 이해, 생각) 카르디아로(인간의 혼, 감정, 육체적 욕망, 그리고 타락한 자아의 중심) 변괴시켜서 추상적인 종교를 만드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용했다. 히브리어성서와 신약의 완벽한 조화를 깨트리도록 사용되었다. 온전하고 완벽한 성서지식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히브리어 성경의 토라중심 사상을 이교도적 해석과 추상적인 종교행위로 뒤바꿨다.
**누스 가(νοῦς,G3563 지식과 지성·이해력·생각의 영역)
**카르디아 를(καρδία, 마음·내면의 중심)
**성령 으로(πνεῦμα, 프뉴마) 온전히 다스릴 때,
인간의 내면에는 더 이상 **혼돈(토후 וָבֹהוּ)**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기초가 '흔들림 없는 굳건한 믿음' 에무나👆 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내적 구조에 기인합니다:
누스는 인간의 지식과 이해, 판단을 관장하는 지성의 영역이며,
카르디아는 인간의 혼, 감정, 육체적 욕망, 그리고 타락한 자아의 중심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생명의 영으로서, 모든 생명체에 호흡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영이 깨어나 거듭날 때, 성령의 검을 받아 참된 생명으로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성령님은 예슈아 메시아의 영이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1장을 통해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드러내심으로써,
그분의 깊이를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로마서 7:22 (예슈아직역)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되”
여기서 '속사람'은 헬라어로 **"ὁ ἔσω ἄνθρωπος" (호 에소 안트로포스)**로, 내면의 자아, 곧 마음 또는 영적인 자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겉사람(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혼)과 속사람(영 또는 영적 자아) 사이의 갈등을 고백하면서, 내면의 깊은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에
즉, 바울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겉사람: 죄의 법과 싸우는 육체적 존재, 때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함
속사람: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고 따르고자 하는 참된 의지
속 사람을(에소 안트로포스, ἔσω ἄνθρωπος)
따라(카타, κατά)
하나님의(투 데우, τοῦ Θεοῦ)
율법x 법o 을(노몬, νόμον)
기뻐한다(쉬네도마이, συνήδομαι)
➡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한다.
그러나(데, δὲ)
내 지체들 안에(엔 토이스 멜레신 무, ἐν τοῖς μέλεσίν μου)
다른 법이(에테론 노몬, ἕτερον νόμον)
내 마음x 지직-사고o의(투 누오스 무, τοῦ νοός μου)
법과(토 노모, τῷ νόμῳ)
싸워(안티스트라튜오메논, ἀντιστρατευόμενον)
내 지체들 안에 있는(엔 토이스 멜레신 무, ἐν τοῖς μέλεσίν μου)
죄의 법에게(토 노모 테스 하마르티아스, τῷ νόμῳ τῆς ἁμαρτίας)
나를(메, με)
포로로 끌고 가는 것을(아이크말로티존타, αἰχμαλωτίζοντα)
본다(블레포, βλέπω)
➡ 그러나 내 지체들 안에 다른 법이, 내 마음x 지직-사고o의 율법과 싸워, 죄의 법에게 나를 포로로 끌고 가는 것을 본다.
비참한(탈라이포로스, ταλαίπωρος)
나, 사람이로다(에고 안트로포스, ἐγὼ ἄνθρωπος)!
누가(티스, τίς)
이(투투, τούτου)
죽음의(투 타나투, τοῦ θανάτου)
몸으로부터(에크 투 소마토스, ἐκ τοῦ σώματος)
나를(메, με)
건져내랴?(뤼세타이, ῥύσεται)
➡ 비참한 나,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께(토 데오, τῷ Θεῷ)
감사하노라(카리스, χάρις)
우리 주(예수 크리스투 투 퀴리우 헤몬,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예슈아 메시아를 통하여
그런즉 나 자신이(아우토스 에고, αὐτὸς ἐγώ)
마음x 지적-사고o 로는(토 누이, τῷ νοΐ)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노모 투 데우 둘류오, νόμῳ Θεοῦ δουλεύω)
육체로는(테 사르키, τῇ σαρκὶ)
죄의 법을 섬긴다(노모 하마르티아스 둘류오, νόμῳ ἁμαρτίας δουλεύω)
➡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예슈아 메시아 우리 주를 통하여.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x 지적-사고o 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체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
• 마음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마음으로 받는 기도 응답과 같은 극히 추상적인 종교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번역은
같은 말씀을 가지고도 이-사람은 이렇게, 저-사람은 저렇게 해석하여
각자 은혜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상相상相 상대주의 신앙을 만들어낸다.
특히 한국인에게 마음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기 가슴부위를 가르키며 감정적 변화와 영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도록한다. 영이신 하나님의 역사는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며 공의로운시다. 그러므로 정확한 성경지식이 영성의 열쇠가 된다.
• 이는 스바냐 3:9에서 하나님께서 “한마음 한뜻으로 주를 섬기게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다.
• 성령의 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룩하게, 정확하게, 철저히 공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바벨론의 영, 혼합의 영, 악령의 번역이 퍼뜨린 결과다.
• 이는 단순한 오역이 아니라,
히브리 성경적 사고체계와 철저한 성경적 해석기준을 무너뜨리기 위한
암세포와 같은 번역이며,
그 뿌리는 이사야 14:13–14, 다니엘 7:25, 12:7에 예언된 하늘에까지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의 계략이다.
• 마태복음 24:24에서 예슈아께서 친히 경고하신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의 영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 각종 은사집회, 성령집회, 영성수련 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무속적 신비주의로 빠진 자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문법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배우려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문자주의자로 몰아세우며,
뒤에서 조롱하고, 험담하고, 폄하한다.
• 그러나 저들은 결국, 자기들이 내세운 어떤 사람의 가르침에 의존하며
토라를 주야로 깊이 깊이 하가(hagah)하지 않는다.
성령의 검 수술: 히브리성서: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하아담의 죄악이 땅에 라브(많은, 큰, 우두머리)하고 그 마음(레브)의 생각(마하샤바)의 모든 계획이 모든(콜) 날들(하욤)에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성령의 검 수술: 히브리성서: 창세기 6:5
"오직 여호와의 토라에 기쁨을 두고, 그의 토라를 주야로 하가한다."
hagah הָגָה (깊이 생각하며, 으르렁대듯, 슬퍼하며, 가슴에 품고, 열정 가득히, 읊조리며)
적들에 의해 하나님의 토라는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거룩한 모에드 신앙을 율법주의로 폄하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주야로 토라를 하가하는 자”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울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세대와 맞서 싸우며, 온 존재와 열정을 다해 하나님의 토라를 품고 외치는 자다.
그 첫째는 예슈아이시며, 그 다음은 열두 사도와 선지자들, 그리고 오늘날에는 참된 **에클레시아(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회중)**의 일원이 바로 이 하가하는 자들이다.
성령의 검 수술: 코에네신약: 로마서 1:28
예슈아 직역: "그들이 엔예슈아 직역: "그들이 에피그노시스(정확한 지식) 안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누스(생각, 사고, 이해, 지식의 기능)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다."
성령의 검 수술: 코이네신약: 베드로후서 3:16
예슈아 직역: "또 그가 모든 편지에서 이것들에 관하여 말하였고,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으니, 아마데스(무식한, 무지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자기들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
성령의 검 수술: 코이네신약: 요한복음 20:7
예슈아 직역: "또 머리(케팔레)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오히려 따로 한 곳에 잘 개어 놓여 있었다."
성령의 검 수술: 코이네신약: 고린도전서 11:4
예슈아 직역: "무릇 남자가 머리(케팔레)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의 머리(케팔레)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개역개정: 시편 133:2 머리(로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개역개정: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성령의 검 수술: 코이네신약: 골로세서 2:19
예슈아 직역: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자라. 그로 말미암아 온 몸이 마디들과 힘줄들로 공급받고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서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신, 흔들림 없는 굳건한 믿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한 단어
🔹 뜻: 신실함, 충실함, 견고함, 믿음, 확고한 신뢰
🔹 Strong’s 번호: H530
🔹 어근: אָמַן (Aman) – 확고히 서다, 확실하게 하다, 믿다
📖 예시 성구
하박국 2:4
"의인은 그의 믿음(emunah)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히브리어 원문: צַדִּיק בֶּאֱמוּנָתוֹ יִחְיֶה
→ 여기서 "에무나"는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충성, 삶 전체로 드러나는 지속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 중요한 특징
에무나는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와 달리, 행위로 나타나는 믿음, 실천적 충성까지 포함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약에는 "행하는, 살아있는, 죽은" 등의 표현이 헬라어 피스티스를 형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마음의 확신이 아니라, 전 인격이 하나님께 묶여 있는 상태,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고 순종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따라서 "에무나"는 히브리어 성서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믿음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