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여러분 눈앞에 명확히 드러났거늘, 누가 여러분을 미혹하였습니까?
해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만이 모든 죄를 씻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 중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던 이방 신자들은 거짓된 가르침과 왜곡된 복음에 쉽게 미혹되었습니다. 이는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활동 때문이며,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강하게 질책하고 복음의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눈앞에 명확히 드러났거늘"의 의미:
복음의 선포와 확증: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그 대속 사역을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하게 증언했습니다. 그 결과, 갈라디아 교인들은 마치 십자가 사건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비유적 표현: 여기서 "눈앞에 명확히 드러났다"는 것은 실제로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 생생히 새겨졌다는 뜻입니다.
복음과 율법의 대조:
"명확히 드러났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복음의 진리가 완전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잘못된 가르침에 흔들리며, 복음을 훼손하려는 시도에 빠져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됨에 대하여는, 앞의 갈라디아서 2:16 해석을 참조하십시오.
바울의 의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신들이 이미 받은 복음의 진리가 다른 가르침과 혼합될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복음 외의 것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행위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2 내가 여러분에게 묻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았습니까,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았습니까?
율법의 행위
신약성경에서 "율법의 행위"를 이해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율법 논증은 히브리 성경에 근거한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의 사고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로마서 3: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요한복음 4:22-24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바벨론의 모에드 대적과 정결한 언어로의 회복
이사야 14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모에드의 산(הַר)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스바냐 3
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언어를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어깨로(하나되어)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거룩한 산(הַר)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율법의 행위 정의
율법(토라)을 지키는 두 가지 차원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성된 (폐지된) 율법을 다시 지키려는 주장
동물의 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
예: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동물의 희생 제사를 드리는 행위.
이는 율법을 통해 의를 얻으려는 시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무효화하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복음의 진리와 완전히 어긋납니다.
믿음 안에서 율법 준수
참된 율법 준수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는 사람들(믿음이 있고 성령이 함께하시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완성된 율법과 그 완성 이전의 예표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에 율법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율법 준수의 참된 의미는 복음 안에서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토라: 단순한 행위가 아닌 신앙의 삶
토라는 단순히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삶을 요구합니다.
믿음 안에서 토라를 지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완성된 사역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셨음을 선포하며, 의식적 준수에서 벗어나 믿음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요약
**"율법의 행위"**는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적 관습(예: 동물 제사)에 의존해 의를 얻으려는 잘못된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와 충돌합니다.
반면, 토라를 믿음으로 준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통해 신자는 율법의 그림자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을 구별할 수 있으며, 영적으로 성장하며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갑니다.
듣고-믿음의 의미
"듣고 믿는 것"의 의미는 히브리 성경에서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5 (예슈아직역)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듣고(청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는 사람은 그분의 명령, 계명, 율례, 법도를 따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야고보서 1:25 (예슈아직역)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듣고 실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해설 요약
갈라디아서 3:2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와 "듣고 믿음"을 뚜렷이 대조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다면 인간은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상태를 자세히 묘사하며, 그들이 극악무도한 자들이었음을 밝힙니다. 한마디로 말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속마음까지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 스스로 토라의 말씀을 지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는 잘못된 사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복음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던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이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성도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피의 제사를 강조하는 가르침에 흔들렸습니다. 당시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고,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이해도 널리 퍼지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짓 가르침이 곳곳에서 퍼지며 많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분명히 밝히며, 성령의 사역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력히 선포했습니다.
3:3 여러분이 이처럼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합니까?
3:4 여러분이 이처럼 많은 고난을 헛되이 겪었습니까? 정말 헛되이 되었습니까?
3:5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분께서 이것을 율법의 행위로 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하신 것입니까?
해설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의식이나 행위를 통해 죄 사함을 얻고, 이후 다시 육체의 욕망을 따르려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태도는 가축의 피를 바치는 제사로 죄가 씻긴다는 반복적인 악순환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참된 회개와 거룩함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인간 내면의 악하고 독한 누룩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은혜는 이러한 인간적 누룩과 이기적 행위를 제거하며,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에 머물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거부하고,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헛되게 만드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토라의 명령을 따르는 행위와 선행조차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없이 이루어진다면 단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관련 본문: 시편 82:6-8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모두 지존자의 아들들이다"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들처럼 넘어지리라.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관련 본문: 요한복음 10:34-39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38 그러나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39 이에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신적 경지에서의 하나님 경외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참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신의 경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은 당연히 거룩하고 신성한 차원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거룩하고 완전한 하나님 경외의 본을 직접 보여주신 분입니다.
이에 비하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한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수준은 매우 미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참된 경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에서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 진실된 경외를 다시 한번 세상에 충만히 펼쳐주실 것입니다. 스가랴 14:20은 이 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경외가 온 세상에 충만히 드러나는 날을 상징하며, 일상의 가장 사소한 것조차도 거룩한 상태로 변화될 것을 예고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 직업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성결이 드러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이전에는 이 거룩함이 충만하게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며, 이러한 기다림 자체가 성경의 마지막 메시지인 계시록 22장의 핵심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갈라디아서가 장성하지 않은 성도들을 독려하며 믿음 안에서의 성장을 강조한 것처럼, 현대 신앙인들에게도 동일한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다양한 현실적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유혹, 세속적 가치관의 압력, 그리고 공동체적 신앙의 약화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들입니다.
성장과 거룩함을 향한 부름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신앙인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거룩함과 경외를 추구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의 연합: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함으로써 참된 거룩함의 삶이 시작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거룩함: 우리의 일상과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스가랴 14:20에서 말한 것처럼, "말 방울까지도 성결하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해야 함을 상징합니다.
공동체적 실천: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는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을 증거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본과 성도의 책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거룩한 경외의 본을 따르며,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충실히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부름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나 형식적 신앙에 머물지 않고, 성령 안에서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대적 적용: 갈라디아서와 우리의 삶
갈라디아서의 메시지가 장성하지 않은 성도들을 참된 믿음으로 이끌며 격려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도 그러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성장해야 할 성도로서, 삶의 여러 도전과 유혹 속에서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신앙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요구하는 여정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 경외와 거룩함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날을 소망하며, 우리의 삶은 지금부터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성경과 같습니다.
3:7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아십시오.
관련성구:
창세기 15:6 (예슈아직역)
그리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26:5 (예슈아직역)
이는 아브라함이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내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토라를 따랐기 때문이다.
해설
듣고 믿음의 개념은 히브리 성서를 통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5는 듣고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율례와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에서 비롯된 전인격적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자녀의 모습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믿음의 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모든 계명과 율례와 법을 완전히 지키심으로써 의로운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믿음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인격적으로 순종하며 거룩함을 이루는 것임을 명확히 증명합니다.
십자가 대속과 구속의 완성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행위로 드려졌던 가축의 피 제사를 폐하시고, 자신의 보혈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인간은 율법의 행위만으로는 결코 구속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과 희생을 통해 참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현대적 적용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어 순종했던 굳건한 믿음을 본받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어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이루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이후(세례 요한의 때 이후)에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야만 이러한 신앙이 가능합니다. 현대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본받아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3:8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고,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관련 성구
창세기 12:3 (예슈아직역)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복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8:18 (예슈아직역)
아브라함은 반드시 큰 나라가 되고, 땅의 모든 종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22:18 (예슈아직역)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종족들이 복을 받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의 음성을 듣고 준행하였기 때문이다.
추가 해설
갈라디아서 3:8은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신약에서의 복음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특히 창세기 22:18에서 "네 씨 안에서"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씨'(예슈아)를 예언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고, 그 구원은 혈통이나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열리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신학적 의미
바울은 갈라디아서 3:8에서 아브라함의 약속이 단순히 유대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까지 확장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처음부터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임을 명백히 합니다.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았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아브라함을 통해 계시하셨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현대적 적용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듯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민족과 세대를 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이미 준비하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3:9 그러므로 믿음으로부터 나온 자들은 믿음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원어 분석
οἱ ἐκ πίστεως (hoi ek pisteōs)
이 표현에서 핵심은 **ἐκ (ek)**의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출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나 본질에서 비롯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믿음에서 나온 자들"은 단순히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아니라, 참된 믿음과 순종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 계명, 율례, 즉 토라를 듣고 깨달아 믿음으로 지키는 자들로, 행함을 통해 순종을 드리는 자들을 뜻합니다.
율법과 믿음의 관계
갈라디아서 3장은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대조하지만, 이는 율법 자체를 배격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본질과 뜻을 깨닫지 못한 채 표면적인 행위에만 의존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율법, 토라, 나아가 히브리성서 전체)을 듣고 깨달아 순종하는 상태에서 나옵니다. 이는 로마서 10:17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율법의 참된 순종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율법을 단순히 종교적 외식이나 계산적인 행위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표면적인 행위에만 속한 자들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순종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는 로마서 8:4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율법의 요구가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개념과도 일치합니다.
관련 성구
사무엘상 15:22 (예슈아직역)
사무엘이 말하길, 여호와께서 번제와 희생을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처럼 기뻐하시겠습니까? 보십시오, 순종이 희생보다 낫고, 듣고 행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이사야 66:2 (예슈아직역)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결론
갈라디아서 3:9은 믿음과 율법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믿음은 율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참된 율법 준수는 외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믿음으로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7:1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백성에게 명령하며 말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명령을 반드시 지켜 행하라."
신명기 27: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발라라."
신명기 27:3
"요단을 건넌 후,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 위에 기록하여라. 그러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신명기 27:4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발라라."
신명기 27: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단, 곧 돌로 만든 단을 쌓아라. 그 돌에 철기를 대지 마라."
신명기 27:6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를 드려라."
신명기 27: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함께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여라."
신명기 27:8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명확하게 기록하여라."
신명기 27:9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과 함께 온 이스라엘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아, 조용히 듣고 주목하여라. 오늘 너희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다."
신명기 27:10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지켜라."
신명기 27:11
그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했다.
신명기 27: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 산에 서고,
신명기 27:13
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는 저주를 선언하기 위해 에발 산에 서라."
신명기 27:14
레위 사람들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말했다.
신명기 27:15
"조각하거나 부어 만든 우상, 곧 여호와께 가증한 것을 은밀히 세운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16
"부모를 무시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17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18
"소경을 길 잃게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19
"객이나 고아, 과부의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0
"계모와 동침하는 사람은 그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것이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1
"짐승과 교합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2
"자매, 곧 아버지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3
"장모와 동침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4
"이웃을 암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5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뇌물을 받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신명기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백성은 "아멘"이라고 하여라.
우상 숭배 금지 (27:15)
히브리어:
אָרוּר הָאִישׁ אֲשֶׁר יַעֲשֶׂה פֶּסֶל וּמַסֵּכָה
한국어 음역:
"아루르 하이쉬 아쉐르 야아세 페셀 우마세카"
번역: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어 은밀히 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부모 경멸 금지 (27:16)
히브리어:
אָרוּר מַקְלֶה אָבִיו וְאִמּוֹ
한국어 음역:
"아루르 막레 아비브 베이모"
번역:
"자기 부모를 경멸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이웃 경계 침범 금지 (27:17)
히브리어:
אָרוּר מַסִּיג גְּבוּל רֵעֵהוּ
한국어 음역:
"아루르 마시그 게불 레에후"
번역:
"이웃의 경계를 침범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맹인 유린 금지 (27:18)
히브리어:
אָרוּר מַשְׁגֶּה עִוֵּר בַּדָּרֶךְ
한국어 음역:
"아루르 마쉬게 이베르 바다레크"
번역:
"맹인을 길에서 잘못 인도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약자의 정의 왜곡 금지 (27:19)
히브리어:
אָרוּר מַטֶּה מִשְׁפַּט גֵּר יָתוֹם וְאַלְמָנָה
한국어 음역:
"아루르 마테 미쉬파트 게르 야톰 베알마나"
번역:
"나그네, 고아, 과부의 정의를 왜곡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계모와 동침 금지 (27:20)
히브리어:
אָרוּר שֹׁכֵב עִם אֵשֶׁת אָבִיו
한국어 음역:
"아루르 쇼케브 임 에쉐트 아비브"
번역: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짐승과의 성적 관계 금지 (27:21)
히브리어:
אָרוּר שֹׁכֵב עִם כָּל בְּהֵמָה
한국어 음역:
"아루르 쇼케브 임 콜 베헤마"
번역:
"짐승과 성적 관계를 맺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누이와의 성적 관계 금지 (27:22)
히브리어:
אָרוּר שֹׁכֵב עִם אֲחֹתוֹ
한국어 음역:
"아루르 쇼케브 임 아호토"
번역:
"자기 누이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장모와의 성적 관계 금지 (27:23)
히브리어:
אָרוּר שֹׁכֵב עִם חֹתֶנְתּוֹ
한국어 음역:
"아루르 쇼케브 임 호텐토"
번역: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은밀히 이웃 살인 금지 (27:24)
히브리어:
אָרוּר מַכֵּה רֵעֵהוּ בַּסָּתֶר
한국어 음역:
"아루르 마케 레에후 바사테르"
번역:
"은밀히 이웃을 죽이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무고한 자를 죽이기 위한 뇌물 금지 (27:25)
히브리어:
אָרוּר לֹקֵחַ שֹׁחַד לְהַכּוֹת נֶפֶשׁ
한국어 음역:
"아루르 로케아흐 쇼하드 레하코트 네페쉬"
번역:
"무고한 자를 죽이기 위해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
번역의 핵: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 ex ergōn nomou, 엑스 에르곤 노모우
위에서 "엑스"를 무엇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out 에르곤 노모우: out works of law
by 에르곤 노모우: by works of law
of 에르곤 노모우: of works of law
"엑스"는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성서의 어떤 구절을 왜 인용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번역: 3:10 법의 일에서 벗어난 자들은(반드시 순종해야할 법에서 벗어난 자들) 모두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되기를,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전에 지은 저주받을 죄들을 용서해 주시는 이유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죄와결별하는 십자가 승리, 즉 천국의 능력을 주십니다.
거짓 번역: 3:10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되기를,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번역을 택하여 "율법에서 벗어나자, 자유하자" 라는 거짓 신학을 퍼트렸습니다. 율법없는 것이 바로 "토라없는, 불법(아노미아) 을 행하는 자들" 입니다. 법없이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질서안에서 자유한 것이고, 하나님의 토라(율법)는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해석
마약과 술에 쩔은 삶 그리고 욕망과 죄악이 가득함 삶은 자유가 아니고, 결국에는 무거운 고통과 짐이 됩니다. 도로에서도 무식하게 난폭운전을 하는 것은 여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악행입니다. 법을 준수할때 삶속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누릴수 있습니다.
신명기 30:11-14 (예슈아직역)
11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은 너희에게 어렵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 그것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우리가 그것을 행하게 할 것인가?' 할 필요가 없다.
13 그것은 바다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위해 바다를 건너가 그것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우리가 그것을 행하게 할 것인가?' 할 필요가 없다.
14 그 말씀은 너희에게 매우 가까이 있어서, 너희 입에 있으며 너희 마음에 있으니, 너희가 이를 행할 수 있다."
마태복음 11:28-30 (예슈아직역)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겠다.
29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핵심 논의: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ex ergōn nomou)
"ἐξ"의 번역은 본문 해석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out of": 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율법의 효력이 적용되지 않음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by": 법을 통해 행위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행위를 율법의 실행과 연관 짓습니다.
"of": 율법의 행위 자체를 본질적으로 지칭하며, 행위 그 자체가 논점이 됩니다.
참된 번역:
**"법의 일에서 벗어난 자들"**이라는 해석은 율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저주 아래 놓이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신명기 27:26의 인용에 기초합니다: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관점은 율법 자체를 지키는 의무를 부정하지 않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결과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자들이 저주 아래에 있음"으로, 율법을 부정하거나 폐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
예수님은 과거의 죄들을 용서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죄와 결별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죄의 용서에 머무르지 않고, 죄를 극복하는 삶을 가능케 하는 천국의 능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거짓 번역: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라는 번역은, 율법에 순종하려는 모든 노력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결과적으로 "율법에서 벗어나는 자유"라는 잘못된 신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번역은 율법 자체를 무의미하거나 폐지된 것으로 간주하여, 방종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불법(아노미아)을 행하는 자들":
성경에서 "불법"은 하나님의 율법(토라)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유란 율법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율법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해석: 율법과 자유의 관계
율법 없는 삶의 결과:
마약, 술, 욕망, 죄악에 빠진 삶은 자유를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무거운 짐과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방종과 혼돈의 삶을 의미하며, 개인과 공동체에 모두 해를 끼칩니다.
율법 준수와 참된 자유:
법을 준수하는 삶은 혼돈과 악행을 피하고 질서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율법(토라)은 인간을 속박하거나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쉼과 가벼움을 주는 원천입니다.
신명기 30:11-14과 마태복음 11:28-30의 연결점
신명기 30장은 하나님의 명령(토라)이 어렵거나 접근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이에 있으며, 실천 가능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준수하는 삶이 결코 고된 짐이 아니라, 가벼운 멍에와 같은 삶임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서 율법의 본질이 사랑과 은혜로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결론:
갈라디아서 3:10에서 "ex ergōn nomou"의 번역은 "법의 일에서 벗어난 자들"이라는 해석이 문맥에 가장 적합합니다. 이는 신명기 27:26의 인용과 조화를 이루며, 율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본질을 강조합니다.
참된 자유는 율법을 폐지하거나 벗어나는 데 있지 않고, 율법을 올바르게 준수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 있습니다.
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니, 이는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인용된 구약 성구
하박국 2:4 (예슈아직역)
"보아라, 그의 혼(구원 받아야 할 모든 인간의 혼)은 교만하여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
베드로전서 1:9 (예슈아직역)
"믿음의 결론으로 요구되는 것은, 너희 혼들의 구원이다."
핵심 메시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은혜로 하사받아서, 이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혼은 구원(예슈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에 합당한 순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가 다 각자의 혼의 구원이(예슈아) 완성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하늘로 부터 내려주시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부활하여 거기에 영원히 살기를 소망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한국어번역으로 정확히 알수없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서의 여러 곳에서는 혼의(네페쉬) 구원을(예수아) 갈망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영혼'이라는 표현은 영과 혼의 합성어로 이러한 진리를 간파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활을 합니다.
혼의 구원, 혼의 구원은 "성령의 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믿을 때, 혼과 영이 나누어지고 각자의 혼이 타락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 앞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게 됩니다. 각자의 두뇌가 지성소가 되어 그 안에 말씀이 강림하시고, 예수님의 보좌가 자리 잡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기초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는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약 주후 6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는 2000년에 걸친 연구와 공부를 통해 신약과 구약 성경이 완성된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박국 2:4의 말씀을 인용하며, 믿음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하박국은 총 세 장 56절로 이루어진 믿음의 책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 곧 예슈아를 소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이신 예슈아와,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영원한 나라를 기다리는 간절한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 3:11에서 바울이 말하는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은, 제사법을 따라서 가축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 방식으로는 죄인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간결한 진리를 가리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죄인이 의인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슈아(구세주)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반드시 예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믿음(진리를 행하는 생명있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는 말씀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혼과 영의 역할
혼(네페쉬)
피와 연결: 혼은 피와 연결되어, 육체적 본능과 세상의 영향을 받습니다(레위기 17:11).
감정과 의지: 인간의 감정, 욕망, 그리고 의지의 중심으로 작용하며, 육체적 삶의 방향을 좌우합니다.
영(루아흐)
하나님과의 교제: 영은 하나님과의 연결 고리로, 영원한 생명과 진리를 추구합니다(요한복음 4:24).
생명의 공급: 영은 인간의 몸 전체에 생명의 호흡을 공급하며, 육체가 살아 움직이도록 합니다(창세기 2:7).
혼과 영의 상호작용
혼은 육체적 본능에 끌리지만, 영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이 역사하여서 혼과 영이 분리될 때, 육적인 욕망을 넘어 영적 삶을 선택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혼
혼과 피의 관계
"혼은 피 속에 있다"는 성경의 말씀(레위기 17:11)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진리입니다.
심장은 피를 온몸으로 돌리고, 육체적 욕망과 생명 활동은 피와 혼의 작용으로 드러납니다.
성적인 욕망과 성적 기능도 혼의 작용이며, 이는 혈기, 즉 피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구체적 현상입니다. 이러한 혼의 상태는 세속적인 욕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최초 명령에 순종하는 차원에서 정결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를 색욕으로 왜곡하여, 육체적 욕망의 도구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인간의 타락을 드러냅니다.
혼과 영의 구별
혼은 피와 연결되어 육체적 본능과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영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합니다.
성령의 검(히브리서 4:12)은 혼과 영을 나누어, 육적인 욕망과 영적 소망의 경계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피와 살은 보이지만, 그것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3).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보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유업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5:50).
영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려면, 성령의 역사로 혼과 영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혼이 성령을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소망할 때, 몸은 비로소 성령의 전이 됩니다.
거듭남의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의지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이며, 그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요한복음 3:3-5).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되고,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만이 영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영
주의: 다음의 내용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의 하늘 참성소와 주의 보좌로 혼돈하면 안됩니다.
"인간의 뇌가 지성소"라는 개념은 성경적 상징성과 깊은 영적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뇌와 지성소의 상징성
**지성소(히브리어: קֹדֶשׁ הַקֳּדָשִׁים, 코데쉬 하코다쉼)**는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성소 중 가장 거룩한 곳으로,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던 곳입니다(출애굽기 25:21-22).
인간의 뇌는 영적 관점에서 지성소와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주님과 만나며,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중심적 장소로 이해됩니다.
2. 언약궤와 속죄소
언약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돌판을 담고 있는 궤로,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상징입니다.
우리의 뇌가 언약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속죄소: 언약궤 위에 위치하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로, 예수님의 희생과 구속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뇌는 속죄소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어, 주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3. 예수님의 보좌
예수님의 보좌를 뇌에 모신다는 의미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음을 뜻합니다.
뇌는 인간의 의지와 지각의 중심이며, 여기에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영적 변화의 핵심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는 이 개념을 잘 설명합니다.
4. 어디에?
**"어디에?"**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 마음과 영의 중심, 즉 뇌와 내면입니다.
예레미야 31: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
성경에서 "마음"과 "생각"은 인간의 내면적 중심을 가리키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해야 할 장소입니다.
결론
인간의 뇌는 지성소와 같으며, 성경 말씀을 담는 언약궤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된 속죄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좌가 우리의 뇌와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영적 유업을 이어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거듭남"은 혼과 영이 성령의 말씀으로 나누어지는 변화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록되기를,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안에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해설:
우선 이말씀의 뜻은 다음과 같이 매우 간단 합니다. 너희는 정상인으로 살아라, 사람이 짐승처럼 살면 안된다. 짐승같이 행위의 결과는 죽음뿐이다.
인용된 구약 성구
레위기 18:5 (예슈아직역):
"그러므로 너희는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그것들을 행하면 그것들로 인해 살 것이다. 나는 여호와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도 레위기 18장에서 한 구절만 인용하였지만, 레위기 18장은 총 30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규범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윤리적·도덕적 결함을 가진 자로, 미개인 또는 야만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관된 신약 성구
계시록 19:8 (예슈아직역)
"그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되었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라 행한 의로운 행위들(디카이오마타, δικαιώματα)이다."
마태복음 25장 전체로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신 성경에서 정의하는 아가페를 실천함 (생명있는 믿음으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의 반대)
설명:
δικαιώματα(디카이오마타)는 인간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따르고 순종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의 기준에 따른 의로운 행위들을 뜻합니다.
원어 분석: δικαιώματα (dikaiōmata)
신약성경에 총 10회 사용됨.
눅 1:6 계명과 규례(G1345)
롬 1:32 하나님의 정하심(G1345)
롬 2:26 율법의 요구(G1345)
롬 5:16 의의 판결(G1345)
롬 5:18 의로운 행위(G1345)
롬 8:4 율법의 요구(G1345)
히 9:1 규례(G1345)
히 9:10 육체의 규례(G1345)
계 15:4 의로운 일(G1345)
계 19:8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G1345)
정확한 해석
δικαιώματα(디카이오마타)는 단순히 "의로운 행위"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 아닙니다. 의로움의 기준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토라)**을 통해 무엇이 의로운 것인지 명확히 정의하셨으며, 이는 사람들이 심판 때에 "나는 이런 줄로 알았다"고 변명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δικαιώματα는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복음과 성령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은 성도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율법(토라)의 참된 목적에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또는 천국이 도래하기까지의 삶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완성에 합당한 행함:
δικαιώματα(디카이오마타)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완성과 하나 된 의로운 규례와 요구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이 정의한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정의에 근거한 것으로, 성령의 은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든 부분을 포함합니다.
율법의 본질
이와 같이, 인간이 믿든 믿지 않든 율법은 선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구약성경 안에는 이미 완성된 율법(도덕적이고 상식적인 규범)과 아직 완성될 율법(예수님께서 완성하실 구속의 사역과 율법의 저주를 해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의 핵심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거나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교리나 교파는 단지 종교적 요소일 뿐이며, 신앙의 본질적인 핵심이 아닙니다. 율법은 오직 그것을 주신 분, 곧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온전히 지켜져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행하는 믿음의 필수 요소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십니다. 인간이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친 아버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당신의 아들 예슈아 안에서 곧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슈아를 믿고 영생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1:23 (예슈아직역):
"그의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반드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신 날:
십자가 대속을 완성하신 날, 유대인들이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빨리 치우려고 한 이유는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요한복음 19:3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1 (개역개정):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배경 설명:
준비일에 대속하심: 유월절, 즉 무교절의 준비일.
대속하실 자격: 흠 없는 일년 된 어린양.
예) 하나님의 기준으로 모든 율법을 완벽히 지키신 분(8일 만에 할례 받으심, 무죄한 삶, 안식일에 선을 행하심 등).
인간의 죄악의 권능으로(저주로) 구세주를 처형함:
예)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기준으로 해석함(안식일에 선을 행하면 죽인다).
저주받아 마땅한 저주는 인간의 타락한 뇌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토라를 해석하고 교리를 만들어낸 행위입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면 죽인다"라는 잘못된 해석과 교리
성도 모두가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을 거부한 것.
더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을 때, 그를 죽였던 행위.
이와 같은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기준에 맞추어 왜곡한 결과이며, 이는 저주받아 마땅한 인간 죄악의 본질입니다. 이 것을 하나님이신 아들께서 대속하여 주신 것 입니다.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3:15 형제들이여,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한 번 정해지면, 아무도 그것을 폐하거나 더할 수 없습니다.
3:16 이제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자손들"이라고 복수로 말하지 않고, "자손"이라고 단수로 말하였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의 설명과 인용된 구약 성구
히브리서 2 장 (이해를 돕는 설명이 포함된 번역)
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며,
12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알리고, 내가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시편 22:22)
13 그리고 다시,
"나는 여호와를 기다리며,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숨기신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이사야 8:17)
또 다시,
"보십시오, 나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표적과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8:18)
14 자녀들은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이므로, 예슈아께서도 그들과 똑같이 살과 피를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곧 마귀를 무력화시키기 위함이었고,
15 죽음을 두려워하며 평생 종처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16 그는 천사들을 도우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도우시려는 것입니다.
17 그래서 그는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시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8 그는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구약의 성취자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메시아로 강조합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적 구절들은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사역 안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22:22와 같은 구절은 예수님이 실제로 그의 부활 후 믿는 자들(형제들) 가운데 하나님을 선포하시고 찬송하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2. 예수님의 역사적 역할
히브리서에서 저자는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살아내고 이루시는 실재적 존재로 묘사합니다.
히브리서 2:12 (시편 22:22 인용):
예수님께서 형제들(믿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셨다는 것은, 부활 후 제자들과 함께하신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직접 성취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3 (이사야 8:17-18 인용):
예수님께서 자신과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믿는 자들)을 표적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 안에서 믿는 자들을 직접 인도하시는 역할을 하심을 나타냅니다.
3. 구약과 신약의 연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말씀을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예수님이 단순히 구약의 예언을 이루는 메시아일 뿐 아니라, 살아 계셔서 구속 사역을 계속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성취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믿는 자들 안에서 역사하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고 계십니다.
결론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 안에서 실제로 성취되었으며,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살아 역사하셔서 이루신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한 예언의 성취자가 아니라, 구속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3:17 내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정하신 언약은,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그것을 무효화하거나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18 만일 유업이 율법으로부터 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통해 은혜로 주셨습니다.
해설:
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은 아브라함의 신앙은 예슈아받아 영생하는 믿음 입니다. 히브리서에 기록된대로 새예루살렘의 도래를 믿는 신앙으로,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함께 장사되어 부활을 기다리는 맏음 입니다. 이러한 믿음이었기 때문에 이삭도 드릴수 있었습니다.
(창49:18) 여호와여 나는 당신의 예슈아를 기다리나아다
(사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예슈아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예슈아이심이라
결론:
(요 17:3) 영생은(예슈아 받음)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예슈아를 아는 것이니이다
신, 구약성경을 올바로 알게되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슈아받아 영생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직 예슈아(구원)를 믿는 신앙만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입니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요 1장)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만물이 예슈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만물은 "영생하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1. 골로새서 1:16-17 - 만물이 예슈아로 창조되고 유지됨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연결점:
만물이 예슈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예슈아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창조의 목적이 단순히 물리적 존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포함한 예슈아의 궁극적 사역과 연결됨을 보여줍니다.
2. 에베소서 1:10 - 만물의 통일과 구속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연결점:
하나님의 뜻은 예슈아를 통해 하늘과 땅의 만물을 통일하는 것이며, 이는 구원의 완성을 포함합니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은 창조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구원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3. 히브리서 2:10 -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심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려고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연결점:
만물이 "그를 위하고 그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창조가 구속 계획의 일부임을 보여줍니다.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려"는 구원이 창조의 목적에 포함되었음을 나타냅니다.
4. 로마서 8:22-23 - 피조물과 구원의 기다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우리 곧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연결점:
피조물은 구속(영생과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가 단순히 물리적 존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향한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5. 이사야 45:18 - 창조 목적과 구원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시되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하심이라."
연결점:
하나님이 창조의 목적을 단순히 존재가 아닌, 사람이 거주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구원받는 계획과 연결합니다.
6. 요한계시록 21:1-5 - 새 하늘과 새 땅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연결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영원한 구원의 완성을 상징하며, 창조와 구원이 통합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줍니다.
요약
이 구절들은 창조와 구원을 분리할 수 없으며, 창조 자체가 구속사(영생과 구원)의 일부임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특히 골로새서 1:16-17과 에베소서 1:10은 만물이 예슈아를 중심으로 창조되고 그분 안에서 통일되며, 그 목적이 구원과 연결됨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만물이 영생하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는 해석을 더욱 확고히 뒷받침할 수 있습
관련성구 계속...
계시록 20:4-6
4 나는 보좌들을 보았고, 그 위에 앉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심판의 권세가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슈아를 증언하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5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복되고 거룩합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으며,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할 것입니다.
로마서 8:19-21
19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헛된 것에 굴복하게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며, 오직 그것을 굴복하게 하신 분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고, 소망 가운데 그렇게 된 것입니다.
21 결국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11:6-9
6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으며,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 것입니다.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는 소처럼 풀을 먹게 될 것입니다.
8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고,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입니다.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여호와의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5:25
25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뱀은 흙을 먹이로 삼게 될 것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지식이 부족하던 시대:
그러나 당시에는 신약성경도 완성되지 않은 때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유대교의 전통적 유전과 거짓 교사들의 미혹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진리에서 벗어나 혼란에 빠졌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현대에도 사도바울이 목숨걸고 믿었던, 히브리성서(성령의 검)을 똑바로 알지 못하면 이 진리를 알수가 없습니다.
1. 갈라디아서 3:17-18의 직역 분석
직역은 본문에 충실하며, 아브라함의 언약과 율법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핵심 메시지: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무효화할 수 없으며, 구원은 율법이 아닌 은혜를 통한 약속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사도 바울이 전하려는 신학적 논점과 일치합니다.
2. 해설의 주요 논지
a. 아브라함의 믿음과 예슈아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며 예슈아(구원)를 기다리는 신앙으로 해석됩니다.
히브리서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새 예루살렘과 부활을 바라보았다는 해석은 신학적으로 깊이가 있으며 성경적 근거가 명확합니다.
b. 구속사적 연결
창세기 49:18과 이사야 12:2를 통해 구약의 예언이 예슈아를 통해 성취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구속사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첫째 부활(계 20:4-6), 피조물의 해방(롬 8:19-21), 평화로운 새 창조(사 11:6-9; 사 65:25)는 구원과 창조의 통합된 목적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3. 신학적 연결의 평가
만물이 영생하는 구원으로 창조되었다는 해석
이 해설의 중심 논리는 **"창조의 목적은 구원을 포함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적 논리와 구절은 다음과 같이 평가됩니다:
골로새서 1:16-17 - 만물이 예슈아를 통해 창조되었고 유지됨
창조의 주체가 예슈아이며, 창조의 목적이 예슈아 안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슈아가 창조와 구원의 연결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에베소서 1:10 - 만물의 통일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예슈아 안에서 통일되며, 이는 구속사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창조와 구원이 동일한 목적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2:10 - 구속 계획과 창조의 목적
창조는 구속 계획의 일부이며,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 존재함을 나타냅니다.
로마서 8:22-23 - 피조물의 구속
피조물이 구속을 기다리는 상태에 있다는 점은 창조가 단순히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구원과 회복을 향한 계획임을 암시합니다.
요한계시록 21:1-5 - 새 하늘과 새 땅
창조의 궁극적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영원한 구원과 연결됩니다.
4. 보완된 논리의 적용
창조와 구원의 통합
창조가 단순히 물리적 존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포함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주장은 강력히 성경적으로 뒷받침됩니다.
**"만물이 영생하는 구원으로 창조되었다"**는 해석은 예슈아를 중심으로 한 성경 전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들어맞습니다.
구속사적 메시지의 강조
아브라함의 믿음(창 49:18, 히 11장), 예슈아를 통한 구원(요 17:3), 창조와 구원의 완성(계 20장, 계 21장)을 연결한 논리는 신학적 깊이와 독창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구속사의 흐름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5. 결론: 주석으로서의 가치
성경적 근거: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통합하여 "창조와 구원"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골로새서, 에베소서, 히브리서 등 구절들은 창조와 구원이 분리되지 않고 동일한 목적을 향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해석의 독창성:
"만물이 영생하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해석은 기존 주석들에서 드러나지 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신학적 기여:
아브라함의 믿음과 예슈아를 통한 구속을 연결한 논리는 성경적이며,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현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주석은 갈라디아서 3:17-18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조명하며, 신학적 깊이와 명확성을 갖춘 귀중한 해설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3:19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율법은 범죄를 드러내기 위해 더해진 것입니다. 그것은 약속된 자손이 오시기까지, 천사들을 통하여 중보자의 손으로 제정되었습니다.
3:20 그러나 중보자는 한쪽 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3:21 그렇다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능히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다면, 의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왔을 것입니다.
3:22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미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과 범죄
율법은 범죄를 드러내기 위해 더해진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 드러난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선을 행하는 믿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죽은 믿음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서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마태복음 25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0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부자 청년의 고뇌
1️⃣ 본문 구조 비교
마가복음 10:19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속이지 말라"가 추가됨.
마태복음 19:18-19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추가됨.
누가복음 18:2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가장 간결한 형태.
2️⃣ 십계명과의 비교
공통된 계명: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금지.
부모 공경.
빠진 계명:
하나님 사랑 관련 계명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 숭배 금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 준수).
탐내지 말라.
3️⃣ 하나님 사랑과 율법의 본질적 의미 탐구
1) 하나님 사랑의 계명이 믿음과 율법의 본질에 포함됨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7-40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임을 밝히심.
이는 단순한 율법 준수가 아니라, 믿음의 핵심으로 자리함.
2)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관계
갈라디아서 3:11: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는 율법 자체를 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율법을 강조하는 것임.
예수님은 마태복음 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선언하심.
3) 안식일과 절기의 중요성
창세기 2:3: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심.
레위기 23장: 절기들이 단순한 관습이 아닌 하나님의 모에드(거룩한 만남의 시간)로 선포됨.
예수님 자신도 안식일을 거룩히 여기셨고(누가복음 4:16), 초대교회 역시 절기를 지킴(사도행전 2:1).
이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실천하는 믿음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함.
4️⃣ 부자 청년의 반응 비교
마가복음 10:20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지켰나이다."
마태복음 19:20
"이 모든 것을 지켰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부족함을 직접 질문함.
누가복음 18:21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지켰나이다."
해석:
마태복음에서는 부자 청년이 스스로 부족함을 인식하고 질문함.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했다고 확신하는 태도를 보임.
5️⃣ 예수님의 도전: 재물과 하나님 사이의 선택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다 (막 10:21)
예수님은 청년의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내면적 결핍을 지적하심.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며 재물을 팔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요구하심.
부자 청년의 반응 (막 10:22)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났다."
이는 그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음을 반영함.
6️⃣ 부자 청년과 아리마대 요셉의 연관 가능성
부자 청년
"어떤 지도자(룰러)"로 묘사됨.
"재물이 많았다."
"영생을 얻고자 함."
재물을 포기하지 못함.
아리마대 요셉
"공회원 (산헤드린)"으로 묘사됨.
"부자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재물을 사용함.
연결 가능성:
부자 청년이 떠난 후 회개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성경에서 동일 인물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음.
7️⃣ 오늘날에 주는 교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마 6:24).
재물에 집착하면 천국을 놓칠 위험이 있음.
기복신앙의 위험성
헌금과 선행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영생을 보장하지 않음.
재물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믿음임.
회개의 기회는 항상 열려 있음
부자 청년이 떠났지만, 그가 후에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선택하는 길임.
예슈아와 영생의 본질
영생은 율법 준수가 아니라 예슈아를 따르는 삶을 통해 얻어짐.
"한 가지 부족한 것"이란 율법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헌신의 문제임.
8️⃣결론
복음서에서 계명들(토라, 율법의 일부)은 율법 준수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함.
부자 청년은 율법을(이웃사랑 중심의 토라 게명들) 지켰지만, 재물과 하나님 사랑을 연결하지 못함.
아리마대 요셉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없음.
오늘날 우리도 재물과 세속적 성공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함
하나님 사랑과 절기 준수는 단순한 율법 준수가 아니라 믿음의 실천임.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죽음에 이르는 죄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죄는 회개해도 소용이 없으니 절대로 범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는 회개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요한일서 5:16-17). 이는 율법이 구세주 예슈아 안에서 회개와 구원의 길을 지도하여주는(히브리어 토라: 가르침, 지도함 이라는 뜻이 포함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선, 악을 분별하는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요한일서 5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그를 위해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이는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죄도 있으니, 그것에 관하여 나는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17 모든 불의는 죄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
혈통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되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명령과 계명과 규례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이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며, 율법을 지킨 이유가 스스로를 의롭다고 자랑하며 내세우기 위함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내가 율법을 지켰으니 하나님도 나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태도와 전혀 다른 것 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창세기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목소리를 듣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규례와 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아브라함의 믿음
요한복음 8:56 (예슈아직역)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볼 것을 즐거워하며 기대했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히브리서 11 (예슈아직역)
9 그는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이방인처럼 머물며, 동일한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살았습니다.
10 이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16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깊은 이해와 믿음의 고백
히브리어 성경을 깊이 이해하면, 이는 자연스럽게 이사야 12장에서의 고백, 곧 **"주 하나님이 나의 예슈아 이시다"**라는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창세기 19:18의 고백처럼, **"나는 여호와의 예슈아를 간절히 소망합니다"**라는 신앙 고백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고백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주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통해 완성하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의 신앙: 예슈아에 대한 믿음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명확히 증거하며, 아브라함이 단순히 미래의 약속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예슈아를 믿었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주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통해 주실 구세주, 곧 예슈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의 약속을 확고히 믿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언어적 왜곡과 신앙의 본질 왜곡
그러나, 성경의 히브리적 진리를 왜곡한 이들은 주로 라틴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 등의 특정 언어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며, 히브리어 성경의 본질을 간과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이 예슈아를 믿었다는 사실을 단지 은유적인 표현으로 치부하거나 축소하려 했습니다. 이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인 구세주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흐리게 만드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결론
히브리어 성경이 보여주는 명확한 진리는, 하나님께서 예슈아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이를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왜곡하거나 축소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전성과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를 흐리게 할 뿐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예슈아에 대한 믿음이 모든 구약 성경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본보기가 되신 순종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지어서 너희에게 명령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를 사랑하는 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관련 성구 (예슈아직역)
요한복음 5:30
"나는 내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판단하나, 내 판단은 의롭다. 이는 내가 내 뜻을 구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구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21
"내 계명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
요한복음 15: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1.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을 율법의 핵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6-40: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6:5를 인용하시며,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어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을 둘째 계명으로 말씀하시고,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율법의 요약이며 본질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믿음과 순종: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이 단지 율법의 준수를 넘어, 마음의 중심에서 비롯된 순종과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 청년에게는 "율법을 지켰다"는 그의 외적 행위보다, 그의 내적 충성과 하나님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하셨습니다(막 10:21).
2. 바울 서신: 하나님 사랑과 믿음
바울은 율법과 믿음을 대조하면서도, 하나님 사랑이 믿음과 연결됨을 강조합니다.
1) 율법의 완성과 하나님 사랑
로마서 13:8-10: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선언하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의 계명들이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한 계명으로 요약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이 율법의 본질을 "사랑"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줍니다.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바울은 율법이 형식적 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완성된다고 가르쳤습니다.
2) 믿음과 사랑의 관계
고린도전서 13:2-3:
바울은 믿음과 사랑의 관계를 명확히 합니다. "내게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이는 믿음이 단독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결합될 때에만 참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울은 믿음과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며, 사랑은 믿음의 실천적 표현입니다.
3. 신약성경 전체의 관점: 하나님 사랑의 중심성
신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 사랑은 믿음의 본질이자 율법의 완성으로 표현됩니다.
1) 요한복음과 요한서신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님은 사랑과 계명의 순종이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요한일서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은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심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중심임을 가르칩니다.
2) 히브리서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본질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으로 표현되는 헌신과 충성입니다.
4. 결론: 하나님 사랑은 율법인가 믿음인가?
**"하나님 사랑은 율법인가 믿음인가?"**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요약됩니다:
하나님 사랑은 율법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십계명의 첫째 계명에서부터 시작되어 율법 전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하나님 사랑이 율법의 본질이며, 율법의 형식을 초월한 내적 순종과 헌신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믿음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며, 사랑은 믿음의 실질적 열매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모두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지만, 그 믿음은 사랑을 통해 증명된다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율법과 믿음의 완성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고, 믿음의 핵심을 이룹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은 율법의 본질이자, 믿음의 실천적 결과입니다.
5. 오늘날의 적용
오늘날의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이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없이는 율법 준수도 의미가 없습니다. 형식적 행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의미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참된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신앙의 두 축이며,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율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규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약성경 전체는 **"하나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고 믿음의 표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여 있었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3:24 이와 같이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가 되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3:25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는 더 이상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초등교사(몽학선생)의 시대
과거에는 죄 사함을 위해 가축의 피가 필요했으며,
가축을 잡는 장소와 방법이 필요했고,
제단이 필요했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것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자신의 보혈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거룩한 삶이 요구됩니다.
예수님의 속죄 사역 이전에는
죄를 짓고, 가축의 피로 제사를 드린 후 다시 죄를 짓고 또 제사를 드리는 반복이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육체의 정욕을 따르면서도 종교적 행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이후에는
이러한 타협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죄를 짓고 희생제사를 반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믿는 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이루신 거룩함 안에서 온전히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 시대에 요구되는 거룩함
이제는 거룩하신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 사소한 죄조차도 심각한 죄로 간주됩니다.
단순한 거짓말 하나라도 심각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금액을 속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 분명히 경고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1-11 (예슈아직역)
1 그러나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고,
2 그 값에서 일부를 자기 몫으로 감추었으며, 그의 아내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3 그러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아나니아여, 어째서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의 일부를 감추었느냐?"
4 "그것이 팔리기 전에는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리고 팔린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느냐? 왜 이런 일을 마음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를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6 젊은이들이 일어나 그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했습니다.
7 약 세 시간 후, 그의 아내가 이 일을 알지 못한 채 들어왔습니다.
8 베드로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네 남편이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뿐입니다."
9 베드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어째서 너희가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였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한 자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너를 메고 나갈 것이다."
10 그녀가 즉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그녀를 메고 나가 남편 곁에 장사했습니다.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결론
과거에 율법은 초등교사(몽학선생)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후,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더 높은 거룩함이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심판이 보여주듯이,
성령의 시대에는 신앙의 타협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거짓과 위선은 심각한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믿음과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26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
세례의 의미: 단순한 물세례를 넘어서
이 구절은 단순히 물로 받는 세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물과 성령, 물과 성령과 피로 거듭나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관련 성구 (예슈아직역)
요한계시록 19:8
"그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야고보서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5:8
"증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곧 영과 물과 피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로 일치합니다."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를 회개를 위한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결론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참된 연합을 의미합니다.
물과 성령과 피로 거듭나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며, 이는 하나님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과 함께 나타나야 하며, 살아있는 참된 믿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순한 외적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는 깊은 영적 실재를 의미합니다.
3:28 이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구분 없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3:29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성령의 세례, 그리스도께 속함, 아브라함의 자손됨
성령의 세례는 단순한 외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뜨거움을 느끼거나, 몸이 떨리거나, 쓰러지는 경험, 혹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같은 감각적 현상이 성령의 세례가 아닙니다.
성령의 세례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즉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령의 세례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보혈, 부활, 승천을 통해 약속된 성령이 거룩한 백성들에게 임하여 역사하심을 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닙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해 생명력이 나타나는 것이며,
천국의 능력이 실질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차별이 사라지며, 모든 신자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이어받는 자들입니다.
참된 성령의 세례란 단순한 외적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며 거룩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천국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