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형제들이여, 나는 율법 아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만 그를 다스립니다.
 
해설: 율법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롬 6장 문맥) 사람에게는 정죄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기 이전, 죄가 날뛰는 상황에서 율법은 죄를 심판으로 다스리고 동시에 폭로합니다.
7:2
 남편이 있는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법에 묶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납니다.
 
해설: 인간은 죄라는 ‘남편’과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슈아를 믿음으로 그 죄의 권세와 이혼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요한일서 3:9).
7:3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결합하면 간음하는 여자가 되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로워져 다른 남자와 결합해도 간음하는 자가 아닙니다.
 
해설: 옛 남편은 짐승의 피, 인간 제사장, 땅의 성전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슈아의 보혈과 하늘 참성소의 대제사장 되심으로 참된 남편이 되셨습니다.
7:4
 이와 같이 여러분도, 형제들이여, 메시아의 몸을 통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에게 속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해설: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죄 가운데 계속 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약은 고의/비고의의 죄를 구별해 다룹니다.
7:5
 우리가 육신 안에 있을 때, 죄들의 정욕이 율법을 통하여 우리 지체 안에서 활동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해설: 죄는 원래부터 활동하고 있었으나, 율법이 들어오자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7: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문자에 낡은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해설: ‘문자에 낡은 것’—가축의 피로 드리는 제사, 인간 제사장 제도, 손으로 지은 땅의 성전—은 죄를 없애지 못했습니다(그림자). 이제는 예슈아의 보혈,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 되심,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율법의 본래 완성이 드러납니다.
7:7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말합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아니면 나는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설: 율법은 죄를 만들지 않고 드러냅니다. 율법 이전에는 죄가 죄로 정의되지 않았기에 인간은 그 정체를 몰랐습니다.
7:8
 그러나 죄가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얻어 내 안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
 
해설: ‘죽었다’는 말은 죄가 실제로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죄는 실존했지만 율법이 없을 때는 죄로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7:9
 나는 전에 율법 밖에서 살았지만, 계명이 오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해설: 계명이 오자 죄의 실상이 폭로되고,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합니다.
7:10
 생명을 주어야 할 그 계명이 내게는 죽음을 이루는 것이 되었습니다.
 
해설: 거룩한 계명의 요구 앞에서 나는 심판받아야 할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7:11
 죄가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얻어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해설: 죄는 사탄의 계략과 결탁해 계명을 악용합니다. 창세기 3장의 옛 뱀 사건과 맥을 같이합니다.
7:12
 그래서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합니다.
 
해설: 율법 자체는 선합니다. 문제는 사람 안의 죄입니다.
7:13
 그러면 선한 것이 내게 죽음을 이루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해 선한 것을 통하여 나를 죽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계명을 통하여 죄가 더욱 심히 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해설: 율법은 선하지만, 죄가 그것을 통해 자기 본질을 더욱 밝히 드러냅니다.
7:14
 우리는 율법이 영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습니다.
 
해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 아래 매여 있음을 고백합니다.
7:15
 내가 하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내가 미워하는 그것을 행합니다.
 
해설: 원죄의 영향으로 내면은 분열되어 있고, 의지만으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7:16
 만약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행하면, 나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셈입니다.
 
해설: 죄의 힘에 눌릴 때조차 율법의 선함은 역설적으로 확인됩니다.
7:17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해설: 죄는 인간 안에 뿌리내린 실재적 세력입니다.
7:18
 내 안,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것을 나는 압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해설: 선을 원해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원죄 이후 인간은 사탄의 영향 아래 무능합니다.
7:19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해설: 죄의 실제 권세가 삶에서 드러납니다.
7:20
 만약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해설: 죄는 단순한 ‘행동 목록’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작동하는 법칙적 세력입니다.
7:21
 그러므로 나는 한 법을 발견합니다. 곧 내가 선을 원하지만, 내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해설: 선을 원해도 악이 함께 있는 내적 모순이 ‘법’처럼 작동합니다.
7:22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해설: 내적 자아는 하나님의 법을 선으로 승인합니다.
7:23
 내 지체 안에서 다른 법이 내 지성(누스)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해설: 마음의 법과 지체의 법이 충돌합니다. 지성은 하나님의 법을 원하지만, 죄의 법은 포로 삼습니다.
7:24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죽음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출할 것입니까?
 
해설: 죄와 사탄의 사슬에 묶인 인간의 절규입니다.
7:25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슈아 메시아를 통하여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성(누스)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해설: 해답은 오직 예슈아입니다. 인간의 내적 모순과 죄의 세력은 예슈아의 구속으로만 해결됩니다. 이 결론은 곧장 8장의 성령의 해방으로 이어집니다.
천 년의 왜곡을 끊는 로마서 7장 해석: 법(토라)은 죄의 원인이 아니다
서론: 복음을 거꾸로 돌려놓은 왜곡
사도 바울은 사람들을 혼란시키려고 로마서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히브리 성경(토라와 예언서)**에 이미 증거된 메시아 예슈아를 선포하기 위해 이 위대한 복음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천 년 동안 적대자는 번역과 신학을 교묘히 비틀어, 하나님의 거룩한 **법(노모스/토라)**을 죄의 원인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인간 중심의 **교리(도그마)**로 복음을 근본부터 뒤집어 놓았다. 이제 우리는 로마서 7장의 본뜻으로 이 왜곡을 끊어야 한다.
1. 문제는 법이 아니라 죄다
하나님의 **법(노모스/토라)**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죄다. 죄는 아담 이후 끊임없이 역사했지만, 토라가 주어지기 전에는 그 정체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토라가 오자 죄는 죄로 폭로되었고, 사람은 자신이 심판받아야 할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바울이 말하는 “옛 남편”은 토라 자체가 아니라, 죄를 임시로 다루던 법 아래의 제도들(짐승의 피 제사, 인간 제사장, 손으로 지은 성전)이다. 이것들은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그림자였고, 오실 메시아 예슈아의 십자가 대속을 예표했다.
중요: 토라는 메시아와의 혼인 언약의 증서요 생명의 가르침이다. 이를 버리면 **아노미아(법 없음)**에 빠진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아노미아)**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2. 토라: 혼인 언약과의 단절이 곧 아노미아
토라는 규정 묶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의 혼인 언약이다. 이 언약 안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죄의 권세가 꺾인다. 그 길은 오직 메시아 예슈아 안에 들어가 그분을 받는 것이다.
 예슈아 안에서 우리는 새 언약에 들어가고, 성령께서 토라를 마음에 새기셔서 순종하게 하신다. 그래서 주를 부른다 하면서 아버지의 토라를 무시하는 삶은 참된 언약이 아니다. 토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우리는 성령의 충만 안으로 인도되었음을 스스로 보게 된다.
3. 로마서 7장의 **‘옛 남편’**이 상징하는 것
바울의 비유에서 옛 남편은 토라 그 자체가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 이후 430년이 지난 때에 정착된 법 아래의 제도로서 다음을 가리킨다.
짐승의 피 제사: 해마다 반복되었으나 죄를 온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인간 제사장: 연약한 인간의 중보는 한계가 있었다.
손으로 지은 성전: 장차 올 참 성소의 그림자였다.
이 제도들은 인류를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묶어 두며, 오실 메시아의 실체를 가리키는 예표였다. 바울은 이 그림자에 머물지 말고 실체이신 예슈아께로 오라고 초대한다.
4. 새 남편: 예슈아와 참된 에클레시아의 예배
로마서 7장의 결론은 우리를 새 남편이신 예슈아께 인도하는 데 있다.
 예슈아께서는 자신의 보혈로 흠 없는 단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고, 지금 하늘의 참 성소에서 참 대제사장으로 중보하신다. 또한 성령을 보내셔서 새 언약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셨다.
 따라서 성도는 모에딤(언약의 때들)—하나님의 정해진-때(카이로스)—에 응답하여 예슈아께 나아가는 예배를 드린다. 그분 안에서만 참된 **구원(예슈아받음)**이 있다.
반대로 **언약을 교리(도그마)**로 바꾸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참된 에클레시아(불러내신-공동체)**는 토라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예슈아의 완성을 따른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제도나 건물에 매이지 않고, 하늘 참 성소에서 예슈아께서 집전하시는 **미크라-코데쉬(거룩한 모임)**에 영과 진리로 참여한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손으로 지은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고 현대판 인간 제사장 제도에 얽매인다. 이것이 바로 천 년을 관통한 왜곡의 실체다.
5. 결론: 언약으로 돌아가자
바울의 로마서 7장 메시지는 분명하다.
법(노모스/토라)은 선하다.
죄가 문제다.
옛 제도는 그림자다.
실체는 오직 예슈아다.
새 언약 안에서 에클레시아는 하늘 성소의 예배로 부름받았다.
성령의 검으로 거짓을 베어내고, 언약으로 돌아갑시다. 잃었던 정혼자를 친히 찾으신 새 신랑, 예슈아께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