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겸손, 온유, 가난과 궁핍에 대한 성경의 정확한 가르침보다는 한국어 번역을 기준으로 이해가 고착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번역 중심의 성경 해석 방식은 극단적 우익 기독교의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의 올바른 진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성경 원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충분히 연구하고 진실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먼저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 이후에 성경 본문에 사용된 단어들의 참뜻을 알 수 있도록 구성하고자 한다.
아나우
עָנָו
H6035
온유한, 고통 받는, 겸손한
אֶבְיוֹן
H34
아브욘
모자른, 궁핍한, 인간의 지식과 여러가지의 것들이 모자라서 타인에게 의존하여야 하는 상태
아니
עָנִי
H6041
가난한, 비천한, 억압 받는
히브리어에서 עָנָו (아나우), עָנִי (아니), אֶבְיוֹן (에뷔욘) 이 세 단어는
모두 ‘가난함’, ‘비천함’, ‘억눌림’을 표현하지만,
정확한 용례와 뉘앙스, 내면의 상태는 명확히 다릅니다.
아래에 차이점과 성경적 예시, 심층적 의미를 완벽하게 정리해드립니다.
온유한, 겸손한, 내면이 낮아진, 하나님 앞에 순복한 자
외적 고통보다 내면의 태도 강조
스스로를 낮춘 상태, 자발적인 겸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복종하고 기다리는 자
민수기 12:3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עָנָו)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시편 37:11 – “온유한 자들(עֲנָוִים) 은 땅을 차지하리라”
아나우는 고난 때문에 겸손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춘 내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슈아의 마음’과 같은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가난한, 비천한, 억눌린
외적 고통, 억압, 사회적 박탈이 원인
사회적 약자, 정치적 억압 속에 놓인 자
종종 사회적 정의와 연결됨
출애굽기 22:22 – “너는 과부나 고아나 가난한 자(עָנִי) 를 해롭게 하지 말라”
시편 9:18 – “가난한 자(עָנִים) 가 영영히 잊히지 아니하리니”
아니는 상황에 의해 비천해지고 억압당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은 내면의 겸손이 아니라, 고통받는 외적 상태에 초점이 있습니다.
궁핍한 자, 결핍된 자, 의존적인 자
단순히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
내면 + 외면 모두 부족
특히 지식, 능력, 영적 인식이 부족하여
타인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상태
시편 72:13 – “그는 궁핍한 자(אֶבְיוֹן) 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신명기 15:11 – “에뷔욘이 항상 땅에 있으리니, 네 손을 펴라”
에뷔욘은 단순히 ‘돈이 없음’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모자라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육체적·지식적·영적 결핍이 모두 해당됩니다.
예슈아는 “아나우(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마 11:29)
예슈아는 **“아니(비천한 상태)”**로 세상에 오셨음 (사 53:3)
예슈아는 “에뷔욘” 같은 자들을 찾고 긍휼히 여기셨음 (눅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