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곡해하는 율법에 관한 말씀
A.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
VS.
B.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
이 두가지는 표현은 완전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잠깐 묵상해 본다면 이 구분은 아주 간단하다.
A.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
사람이 의롭게 되려면, 죄사함음 받아야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세주 예수의 구원없이, 율법의 행위로 죄사함 받을수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또다는 주장은, 구세주를 믿고 구원 받으려면 가축의 살과 피로 드리는, 희생 제사를 성전에 가서 제사장을 통하여 드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불어, 예수를 믿었어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 하는 등의 것이다.
B.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
토라(율법)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
마태복음 23:2-3 (ESV)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행하는 대로는 하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행하고 지키라"에 대한 분석**
이 구절의 헬라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πάντα οὖν ὅσα ἐὰν εἴπωσιν ὑμῖν, ποιήσατε καὶ τηρεῖτε**
(판타 운 호사 에안 에이포신 휘민, 포이에사테 카이 테레이테)
a. **πάντα (panta)**
"πάντα"는 "모든 것" 또는 "무엇이든지"를 의미하며, 이 구절에서는 다음 절을 수식하는 복수 목적격 형태로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따르도록 지시하시는 것을 강조합니다.
b. **ὅσα (hosa)**
"ὅσα"는 "무엇이든지"를 의미하는 관계대명사로, "πάντα"와 짝을 이루어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모세의 율법에 기초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c. **ἐὰν (ean)**
"ἐὰν"은 "만일" 또는 "무엇이든지"를 의미하는 조건 부사로, 조건절을 도입합니다. 이 맥락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특정 조건 하에서 따라야 함을 나타냅니다.
d. **εἴπωσιν (eiposin)**
"εἴπωσιν"은 "그들이 말하다" 또는 "그들이 전하다"라는 의미의 부정과거 능동 접속법 동사입니다. 접속법에서 과거 시제는 일반적이거나 조건적인 행위를 나타낼 수 있으며, 여기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e. **ὑμῖν (hymin)**
"ὑμῖν"은 "너희에게"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청중을 직접적으로 지칭합니다. 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예수님의 청중에게 전해지고, 그들이 이를 따르도록 지시받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f. **ποιήσατε (poiēsate)**
"ποιήσατε"는 "행하다" 또는 "실행하다"라는 의미의 부정과거 능동 명령법 동사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준수해야 할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부정과거 명령법은 즉각적이고 완전한 행위를 촉구하는 긴박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g. **τηρεῖτε (tēreite)**
"τηρεῖτε"는 "지키다" 또는 "유지하다"라는 의미의 현재 능동 명령법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ποιήσατε"와 짝을 이루어 지시된 내용을 단순히 실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현재 명령법은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행동을 강조하며,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따르는 필요성을 시사합니다.
2. **"그들이 행하는 대로는 하지 말라"에 대한 분석**
이 구절의 헬라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κατὰ δὲ τὰ ἔργα αὐτῶν μὴ ποιεῖτε**
(카타 데 타 에르가 아우톤 메 포이에이테)
a. **κατὰ (kata)**
"κατὰ"는 "~에 따라" 또는 "~에 일치하여"라는 의미의 전치사로, 이 맥락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동과 대조되는 행동 지침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이 단어는 그들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가르침과 행동 간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b. **τὰ ἔργα (ta erga)**
"τὰ ἔργα"는 "행위" 또는 "일"을 의미하는 복수 중성 목적격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행동을 위선적이라고 비판하며 모방할 가치가 없다고 경고합니다.
c. **αὐτῶν (autōn)**
"αὐτῶν"은 "그들의"라는 의미의 소유 대명사 복수 속격 형태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지칭하며, 그들의 말과 행동을 구분합니다.
d. **μὴ ποιεῖτε (mē poieite)**
"μὴ"는 "하지 마라"라는 의미의 부정 부사로, 금지를 형성합니다. "ποιεῖτε"는 "행하다" 또는 "실행하다"라는 의미의 현재 능동 명령법 동사입니다. "μὴ ποιεῖτε"의 조합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따라 하지 말라는 명령을 형성합니다. 현재 명령법의 부정 형태는 지속적인 금지를 나타내며, 그들의 본보기를 따르지 말라는 경고를 전달합니다.
3. **"행하고 지키라"와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따르지 말라" 간의 관계**
"ποιήσατε καὶ τηρεῖτε" (행하고 지키라)와 "μὴ ποιεῖτε" (행하지 말라)의 관계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것을 따르라고 하시는데, 이는 그들의 가르침이 모세의 율법, 즉 토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성한 계명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법을 실행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ἔργα" (행위)를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들의 행동은 위선적이며, 법의 진정한 의도와 정신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ἔργα"는 외적인 경건에만 치중하며, 하나님의 율법의 내적인 영적 준수를 결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동과 지속적인 율법 준수를 강조하시면서도, 표면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율법의 의도를 참되게 구현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창조주의 생명을 주는 계명을 그대로 실천하고, 외적인 의식에만 의존하여 그 의미를 왜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베드로후서 3장은 바울의 서신을 왜곡하여 해석하지 말 것을 강력히 경고합니다. 시편 1장에서 언급된 토라를 묵상하는 축복과 바울 서신이 말하는 "법"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인식해야 할 핵심이 있습니다. 바울은 다양한 문맥 속에서 토라의 본질을 언급하며, 때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때로는 죄와 사망의 법을 가리킵니다. 이 두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바울이 말하는 "법"을 하나의 개념으로 단순화하면, 심각한 오해와 영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려면 반드시 문맥 속에서 분석해야 합니다. 바울이 자주 언급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십자가의 승리이며, 죄악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죄와 단절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반면, 바울이 **"죄와 사망의 법"**을 말할 때 그는 자주 **"율법 아래 있는 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법을 지키지 못한 채 범죄 속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현실을 뜻합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을 받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과 같습니다. 사람의 몸을 자르고 불태우며, 돌로 쳐 죽이는 야만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곳에서는 테러와 잔혹한 폭력이 거리낌 없이 퍼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의 결과입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십자가 처형이 극도로 잔혹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거리에서 사람을 매달아 죽이는 나라들이 존재합니다.
고(故)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러한 무자비한 악법이 성행하는 현실을 **"정글의 법칙"**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극악무도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사회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을 악의적으로 변질시킨 자들이 온갖 음모론을 퍼뜨렸고, 시간이 흐르며 그것들은 끝없이 진화를 거듭하며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지하고 괴팍한 자들이 목회자가 되어 이러한 음모론에 기름을 붓고, 오늘날 한국에서 극우 기독교 폭력 집단이 법원을 테러하고 헌법 기관을 협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자비함이 자비를 더욱 빛나게 하고, 불법이 참된 합법의 가치를 갈망하게 만듭니다.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기 전에 어둠과 혼돈이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온 세상은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예슈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장차 지상에 도래할 완전한 구원을 온전히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처럼 명확한 구분을 무시한 채, 바울이 언급한 "법"을 억지로 복잡한 신학적 개념으로 해석하면 결국 영적 혼란과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신앙의 진정한 길을 걷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등불이 될 것입니다.
The Pauline Epistles and the Torah
📖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간 사람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죄악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던 삶에서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죄에서 자유롭게 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말과 행동, 생각과 심령에서 천국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이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증거로 드러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열매가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맺어지는 자들만이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 행위나 표면적인 신앙 고백을 넘어, 내면의 깊은 변화와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맺어지는 열매로 나타나는 삶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8:2에서 말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단순한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자들에게 실제적인 자유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능력입니다. 이는 죄와 사망의 법, 즉 율법 아래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죄로 인해 정죄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해방의 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단순히 죄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유가 그들의 삶 속에서 실제적인 증거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며, 육체의 소욕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천국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는 기대감이 그들의 삶을 이끕니다.
따라서 로마서 8:2에서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 자유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맺어지는 열매들로 증명되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즉 진정한 토라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와 같은 삶은 신앙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삶입니다.
📖 로마서 7장
9 내가 한때 율법과는 상관없이 살았으나, 계명이 오자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10 그러므로 생명을 가져다줄 줄 알았던 그 계명이 사실은 죽음을 가져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1 죄가 계명을 통해 기회를 포착하여 나를 속이고, 그 계명으로 인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
**해석 및 신학적 가치**
이 구절에서 바울은 율법과 죄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며, 율법이 본질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고, 죄는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얻어 사람을 속이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내가 한때 율법과는 상관없이 살았으나"라는 표현은, 율법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자신이 죄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주어짐으로써 죄의 본성이 드러나고, 그 결과 그는 영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법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죄가 율법을 이용해 인간을 속이고, 정죄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율법이 본질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도구이며,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죄가 그 율법을 악용하여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는 율법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인간의 죄성 때문에 율법이 생명 대신 정죄와 죽음을 가져오는 도구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구절은 율법의 본질과 그 목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나타내지만, 인간의 죄는 그 율법을 왜곡하고 악용하여 사람을 정죄와 죽음으로 이끌게 됩니다. 바울은 이 점을 통해 율법의 중요성과 그 한계를 동시에 강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생명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의 본성을 드러내어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언약의 필요성을 예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율법이 완성되고, 참된 생명과 자유가 주어짐을 나타냅니다.
🔖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개념을 단지 추상적인 의미로 국한시키는 것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토라의 가르침에 순종함으로써 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롭지 못한 탐욕과 욕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토라를 충실히 따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해석 및 신학적 가치**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현재의 삶에서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영생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 축복은 박해와 함께 온다는 것을 명확히 하시며, 신앙의 길이 쉬운 길이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역설적인 원리를 나타냅니다. 세상의 가치와 질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낮아질 수 있으며,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광을 받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시면서, 그러한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과 보상을 약속받는 길임을 나타냅니다. 이 구절은 제자도의 본질과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영적 축복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토라의 심판과 저주를 짊어지셨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토라의 축복을 남겨줍니다. 토라를 올바르게 묵상함으로써 이러한 축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현세와 내세의 축복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묘사하며, 영원한 축복에 대한 그의 소망과 하늘나라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 히브리서 11장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9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타국인같이 살았으니, 이는 그와 같은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음이라."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해석 및 신학적 가치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본질과 그 힘을 강조하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6절에서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으로 믿는 것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9절과 10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약속의 땅에서 타국인으로서 거류하면서도, 하나님이 계획하고 지으실 영원한 도성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갔음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임시 거처인 장막에서 살았지만, 그의 믿음은 영원한 기반이 있는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 구절들은 신앙의 여정에서 믿음이 단지 현재의 삶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과 하늘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삶을 통해 믿음의 본질과 그로 인한 영원한 축복의 약속을 증거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진심으로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모든 신자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모범을 제시하며, 신앙의 여정을 통해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תּוּר תֹּורָה
כִּי אִמ בְּתֹורַת יְהוָה חֶפְצֹו וּבְתֹורָתֹו יֶהְגֶּה יֹוםָם וָלָיְלָה׃
**투루 토라 (תּוּר תֹּורָה)의 의미와 시편 1:2과 히브리서 11:6의 연관성**
**1. 투루 토라 (תּוּר תֹּורָה)의 의미와 분석**
- "תּוּר" (Tur)는 히브리어로 "탐색하다", "정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입니다. 이 단어는 민수기 13장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간 12명의 정탐꾼 중,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남은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가나안 땅을 탐사하여 그들이 받은 토라의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תֹּורָה" (Torah)는 "가르침", "법", "교훈"을 의미하는 명사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과 가르침을 지칭합니다.
"투루 토라"는 단순한 탐색을 넘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살아남고 복을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탐구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2. 시편 1:2의 문법 분석**
- 시편 1:2: "כִּי אִם בְּתֹורַת יְהוָה חֶפְצֹו וּבְתֹורָתֹו יֶהְגֶּה יֹוםָם וָלָיְלָה׃"
- "כִּי אִם" (Ki im): "오직", "그러나"라는 의미로, 앞서 언급된 부정적인 상태와 긍정적인 상태를 대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 "בְּתֹורַת יְהוָה" (BeTorat Adonai): "여호와의 토라 안에서"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르침에 깊이 헌신함을 나타냅니다.
- "חֶפְצֹו" (Cheftzo): "그의 기쁨" 또는 "그의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는 토라를 묵상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 "יֶהְגֶּה" (Yehgeh): "묵상하다", "고려하다"는 의미로,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깊이 숙고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삶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יֹוםָם וָלָיְלָה" (Yomam vaLaila): "낮에도 밤에도"라는 의미로, 하루 종일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따름을 의미합니다.
**3. 히브리서 11:6과의 연관성**
히브리서 11:6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분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임을 신뢰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편 1:2는 하나님의 토라를 묵상하는 자가 복을 받을 것을 강조하며, 투루 토라의 개념은 이러한 믿음과 신뢰의 구체적인 예시를 제공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가나안 땅을 탐색했을 때, 그들은 믿음으로 살아남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히브리서 11:6에서 강조하는 믿음과 상급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투루 토라와 시편 1:2, 히브리서 11:6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즉 토라를 단순히 읽고 아는 것을 넘어서, 그 말씀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그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