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1
그러므로 모든 심판하려 드는(크리노)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지 변명할 수 없음이 있다. 네가 다른 사람을 심판자 행세하면서도 같은 일들을 행함으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롬 2:2
우리가 아는 것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 위에 하나님의 **판결(크리마)**이 진리대로 임한다는 것이다.
롬 2:3
그런데 사람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자 행세하면서 네가 같은 일을 행하는 너는, 네가 하나님의 판결(크리마)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롬 2:4
혹은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그 인자하심이 너를 회개로 인도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롬 2:5
다만 네 완고함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καρδία, 카디아) 때문에,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κρίσις, 크리시스)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것이다.
해설: 어떤 행위가 죄인지 아닌지는 이미 하나님께서 판결해 놓으셨다. 예를 들어, 토라는 동성애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죄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그 죄를 행하는 경우가 바로 바울이 경고하는 모습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 성경을 따르지 않는 것은 자유의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된 말씀을,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변개시키는 것은 매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것은 곧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하나님의 법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바울은 이러한 교만한 행위를 강력히 책망한다.
성경은 변경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주장이나 해석에 따라 바뀌지 않으며, 기록된 그대로가 영원히 유효하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명기 4:2)
롬 2:6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으신다.
롬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음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롬 2:8
오직 다투는 자와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신다.
롬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네페쉬) 위에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다.
롬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다.
롬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롬 2:12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아래로(ὑπὸ νόμον, 휘포 노몬) 범죄한 자는 율법 아래로 판결을 받을 것이다.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롬 2:14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자기들이 스스로 율법이 된다.
롬 2:15
그들은 율법의 행위가 그들의 마음(카르디아)에 기록된 것이 나타나 있으며, 그들의 양심이 증언하고, 그들의 이성(νοῦς, 누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기 때문이다.
해설: “율법의 행위가 그들의 마음(καρδία, 카르디아)에 기록되었다”는 표현은, 인간의 심장이 단순히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기관일 뿐 아니라, 성경적으로는 육체적 욕망의 중심으로 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심장은 곧 인간 욕망과 행동의 원천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통해 토라를 올바로 깨달아 알게 된 후, 인간의 내적 구조를 더 깊이 드러낸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두뇌의 영역, 즉 누스(νοῦς)**는 단순한 사고 기관이 아니라, 지성소와 같은 자리이다. 그 안은 마치 **언약궤 안에 성령의 검(말씀)**이 담긴 것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거룩하게 구분되고 나누어진 거룩한 지성이다.
따라서 거듭난 자에게는, 심장(카ρδία, 욕망의 중심)조차도 이 누스(거룩한 지성)의 통제를 받는다. 곧 성령의 검으로 혼과 영이 거룩하게 나누어진다. 이때 영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영적인 누스에 임하여, 사람의 정신이 뇌 속에서 중심을 잡아, 혼육의 욕망을 통제하고 온몸을 다스린다.
그 결과, 인간의 혼과 육은 더 이상 욕망과 이방인의 것들에 끌려가지 않게된다. 하나님의 법(토라)을 따라 모에딤을 사모하며, 미크라 코데쉬를 성수하는 예배와 찬양, 기도와 송축, 그리고 거룩한 선행으로 나아가게 된다. 레위기 23장의 “성회(미크라 코데쉬, מִקְרָא־קֹדֶשׁ)”는 단순히 모임의 형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모임에 부름받아 참여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קדושים, 케도쉼)**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롬 2:16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메시아 예슈아로 말미암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이다.
롬 2:17
네가 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롬 2:18
율법에서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롬 2:19
맹인의 인도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 스스로 확신하며,
롬 2:20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 율법 안에 지식과 진리의 모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롬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롬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성 모독을 하느냐?
롬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롬 2:24
기록된 바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함과 같다.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된다.
롬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가 할례와 같이 여겨지지 않겠느냐?
롬 2:27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키면, 글자(γράμμα, 그라마)와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않겠느냐?
해설
바울은 단순히 **글자로 기록된 토라(γράμμα, 그라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의롭다 말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토라 스크롤이라는 물질 자체를 거룩하게 여기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글자에 기록된 토라의 참뜻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방인이라도 토라의 행위를 실천한다면, 문자만 지니고 실제로 행하지 않는 자들을 도리어 정죄하게 된다.
신명기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롬 2:28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겉으로 육체(사륵스)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롬 2:29
오히려 안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καρδία, 카르디아)의 할례이니, 영(πνεῦμα, 프뉴마)에 있고 문자(γράμμα, 그라마)에 있지 않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하나님에게서이다.
해설
바울은 참된 유대인의 표지가 단순히 외적인 표식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할례란 피흘림을 의미한다. 인간의 심장(카ρδία, 카르디아)은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기관이며, 동시에 성경적으로는 육체적 욕망의 중심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란 단순히 육체 일부의 표식을 넘어서, 욕망의 자리인 카르디아에서 피흘림이 일어나는 것, 곧 자기 욕망을 잘라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내적 변화를 뜻한다.
이 할례는 문자(그라마)―즉 토라가 기록된 스크롤을 소유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영(프뉴마), 곧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시는 내적 변화 안에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